행복 메시지 함

있잖아, 그런 거

by 강물처럼


탁자에 앉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상대적으로 바깥 활동이 많은 애들 엄마한테 듣는 이야기로 내 사회생활의 일부를 챙긴다. 다음에 이야기의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면 조금이라도 사연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미묘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관심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아는 척하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회생활이라고 거창하게 써붙일 것까지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소식은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막연한, 마치 공기에 대해 필요성은 느끼지만 특별히 고마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 정도에서 심심하지 않은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이 세종시에 아파트 청약인지, 신청인지를 했는데 세종에 아파트가 되기만 하면 가격이 바로 배로 뛴다고 그런다. 로또 같은 것이라서 경쟁률이 엄청 높았는데 글쎄 그게 또 그 집 아들에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로또 2등이 됐다는 이야기로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거품도 가라앉기 전에 후속타다. 그리고 또 히트다. 이럴 때 내 표정을 내가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마땅한 표정을 짓기가 애매모호한 입장이다. 평소에 내가 말하고 즐기던 영역에서 한참을 벗어난 이야기에 어떻게 맞장구를 쳐야 좋을지 인간적으로 슬쩍 복잡하다. 글쎄, 돈이 거기 끼어있는 일이라서 마냥 초연한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흥미 없다거나 속물근성이라도 지적하는 것도 여물지 않은 질투 같아서 싫고. 내 입장이란 것이 무슨 이야기를 듣거나 할 때 나도 모르게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을 알겠다.

그 이야기가 편하게 들리느냐, 재미있게 들리느냐, 불편하느냐는 내 처지가 어떤가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곧이어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귀를 잡아당긴다.

처남, 하나밖에 없는 처남은 딸 하나를 키운다. 그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 됐다. 어렸을 적부터 야무진 구석이 있었고 처가에서는 유일한 손 孫이 되는 아이라 장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편이다. 물론 엄마, 아빠의 애정이야 더 말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주위 사람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거나 살갑게 구는 구석이 덜한 편이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는 거 하나. 그걸 아쉬움이라고 토로하기에는 지금 세상은 바쁘다. 나 어렸을 적에는 어른이 다만 어려워서 자리를 피했고 지금은 어려워진 대신에 바빠진 것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면 별 기대치가 높지 않거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솔직히 우리는 모두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찾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말도 필요하니까 하는 것, 쓸모없는 것들과 의미가 없는 것들은 방치되었다가 잊히는 것, 사람도 물건도 관계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사람을 탓하기 전에 구조적으로 모순적이다는 말을 꺼낸다. 아, 사설이 길다.


그 조카가 기말 시험에서 다시 전교 1등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 모두 1등급으로 싹쓸이했다며 애들 엄마가 반쯤 좋아하고 반쯤 감탄한다. 나는 이때도 내 표정이 보고 싶었다.


거실에서 선풍기를 앞에 켜놓고 무슨 책인가를 보고 있던 강이는 제법 통통하다. 저한테는 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빌 때도 있는데, 키가 좀 자랐으면 좋겠는 생각을 매일 한다. 사람이 늘씬하게 보이는 것하고 통통하게 보이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잖아!

지금도 매 순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기록하며 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라서 더 그런 것일까. 내가 아는 서울 사는 친구는 오랫동안 해외 근무를 해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애틋하지는 않다고 하던데, 나는 좀 그런 면이 더한 편이다. 아이들 빨래를 널면서 감상에 빠지는 오십 대 남자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덥다. 식구들 밥그릇을 설거지하면서 '이럴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중년 남자는 답답하다.

아무래도 내가 아이들하고 너무 긴 시간 같이 살아온 듯하다. 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4살 때도 같이 아침을 걸었고,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처음 들어선 날에도 함께 책상까지 걸어갔고, 중학교에 가는 날에도, 오늘도 하루 중에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서로 부대끼며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잘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물론 저희들이야 싸울 생각조차 못하는 상대 아니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내 딴에는 평화롭다.


늘 내가 그러지 않든, 서열 1위는 강이, 2위는 산이라고.

어디에서 서열 1위가 설거지를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채우냐고, 그것을 나는 정말이지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곧 도사가 될지도 모른다. 깨끗하게 말끔히 씻어내는 그릇, 숟가락, 접시들처럼 나도 그 물에 씻겨내리는 것은 너희들 덕이다. 테이블을 행주로 훔치는 일이 사람을 단련시킨다. 흥, 興이란 것은 일어나는 기운이다. 가끔씩 내 안이 바깥보다 더워질 때에도 흥, 그러면서 탓도 하고 원망도 한다. 일어나는 것들은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달랠 줄 알아야 뒤탈이 없다. 살아있으니까 힘이 나는 것을 좋게 해석해야 한다고 나는 서열 4번째의 위치에서 공부한다. 읽고 쓰고 정리한다.



강이가 조그만, 아주 조그만 상자를 하나 보여주면서 이게 뭔 줄 아냐고 묻는다.

글쎄, '해피 메시지 함'이라고 한단다.

자기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하나씩 꺼내 펼쳐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 그거 포춘 쿠키에서 그렇게 나오는 거잖아.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떠올렸든, 너는 그래서 좋다. 좋은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나누려는 마음은 어디 가서 구할 수 있을까. 어디에서 그 샘물은 흘러나오는 것이냐. 너도 나처럼 어딘가에서 설거지라도 하고 사는 것이냐.


내 일상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다. 그럴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기준이 그것을 알아볼 것이다.

행복 메시지 함이 나를 한 단계 높여준다. 내 기준은 나도 모르게 높아졌다. 그런데 그 높이란 것이 많이 특별한 높이라는 것을 여기까지 읽어온 사람들은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한 높이가 다 있구나.

낮아졌는데 높아진, 높아졌는데 편안한 높이. 그것을 hight라고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서양에서도 그런 높이는 아직 없구나. 우리는 정말 천재다. 너는 인스피레이션 inspiration!, 내 삶이 예술이 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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