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이야기만 나오면 귀살스러운 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앞뒤 순서도 없이 사람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들은 일이든 물건이든 사람을 귀살스럽게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막막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고 하루 생활권이 되었다고 놀라워하고 좋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계화와 국제화는 어떻게 다르냐고 묻던 것이 20여 년 전에 주로 다뤄지던 면접 질문이었습니다.
항상 뒤늦게 깨닫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이 하는 일에는 그림자가 길고 짙다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쉽고 편리하며 간단하기까지 했던 일들일수록 그 문제가 심했습니다.
뒷감당이 안 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며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나라의 기후 문제는 다른 나라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으며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지구 전체가 기후 변화에 따른 책임을 하나씩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지구촌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본격적인 문제들의 샘플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있는 구조 안에서 각자의 편의주의는 어디까지 가탈 부릴까요. 언제까지 칭얼대며 어린애처럼 굴까요. 지구는 8배 더 폭염에 시달리고 2배 더 가뭄이나 폭우가 찾아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세계는 ...
하지만 그전에 기억해야 할 마음 아픈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 변화.
어쩌면 우리를 위해 일흔일곱 번을 다시 일어나고 다시 웃고 다시 뒤척이며 움직이는 것은 바로 자연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나 더 나는 그들을 괴롭혀야 직성이 풀릴 것인지, 나는 내가 불안합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오 18:35
대자연이라면서, 대지 大地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말뿐입니다. 그 대지가 낳은 우리와 자연은 형제와 같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요.
잠자리 한 마리에도 3억 년에 걸친 유전자의 긴 여행이 담겨있다는데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살아가고만 있습니다.
그래서 살림살이는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