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점심 드시게요 7

빛이 난다

by 강물처럼


하고 싶은 것과 간절한 것은 비슷하긴 해도 같은 색조 色調는 아니다. 색조라는 말을 나는 설명할 수 없다. 머리로 아는 그것은 틴트 Tint 라고 하거나 셰이드 Shade 같은 색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따금 던지는 말에서 대충 건네지는 느낌이 전부다. 밝은 또는 어두운, 맑은 아니면 탁한 톤 Tone.

명암이란 말을 누가 나에게 보여줬던가. 나는 명암을 그림에서보다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더 선명하게 배웠다. 그것은 정말, 밝음과 어두움의 세계였으며 불이 켜졌거나 꺼진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이 보이는 방식이었다. 내 방에는 불이 켜졌었던가, 아니면 꺼졌었던가. 차츰 어두워지는 페이드 아웃 Fade out 이나 페이드 인 Fade in 같은 말이 세상에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게 됐다. 선택하는 일은 늘 어렵고 선택받는 일은 항상 빛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서 불을 끄고 살기에는 불편했다. 잠을 잘 때에는 어두운 것이 좋다. 그리고 일이 없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프로메테우스는 밤에 다시 간이 생겨나니까. 어둠 속에서 그는 살아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따뜻한 온기와 환한 빛으로 사람을 돕는다. 그리고 그는 독수리에게 늘 간을 쪼아 먹힌다. 벌이다.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그는 얼토당토않은 한 방을 여지없이 먹여놓고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형벌처럼 간을 다 먹히고 산다. 오늘도 뜨거운 여름 볕 아래에서 그의 심장과 간은 녹아난다.


불은 열이고 열은 빛을 낸다. 빛은 나는 것인지 내는 것인지, 처음을 아는 사람이 영원이 없는 이 세상에서 그마저도 또 수수께끼처럼 엮이고 엮여 사람을 간지럽힌다. 색을 하나도 알지 못하고 나는 그저 내 감정에 따라 색조라고 또 부른다. 단팥에는 어떤 색조가 풍기는가. 앙, 하고 소리 나는 맛에는 어떤 색조가 일어나는가. 그것은 있었던가 없었던가.


내가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에세이 같은 글을 한 편 써보고자 하는 뜻일 수도 있고, 노란 우산꽃 닮은 늦여름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마타리꽃을 황순원의 소나기에서처럼 수줍게 건네고자 하는 뜻일 수도 있다. 글쎄, 내가 아는 이별은 소나기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는 말을 여기에서라도 해볼까.

나는 소녀가 되고자 했을 것이다. 꽃을 꺾어 그것을 주느라 설레는 소년보다, 냇가 건너편에서 징검다리 중간에 자리를 잡고 물속을 들여다보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년보다, 하나도 버리지 마, 그런 말 한 번쯤 해보는 삶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이 전생의 전생의 전생을 타고 넘어왔던 바람이었을 것이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말. 그림, 글이었다.


팥을 삶고 싶어질 것이다.

반죽도 해보고 빵도 구워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 거 한 번 없이 산다면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거니까.

한센병이란 말을 나도 들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일본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웠던 날들이었다.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믿지는 마라, 일은 그냥 일이잖아. 통째로 내 젊은 날의 한 시절을 나는 정말 그곳에서 일하면서 지냈던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그것은 일이었던가, 이랏샤 이마세 그러면서 큰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면서 나는 부끄럽거나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워진 거리를 지나 불 꺼진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만히 녹아내렸다. 사 조 반짜리 다다미에서 지냈던 그해 여름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오래된 창문으로 그보다 더 오래된 모과나무 가지들이 달빛이었던가, 가로등이었던가, 슬픈 그림자처럼 비쳤다. 그 밤이 가장 긴 밤이었다.


영화 제목은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그대가 좋아하는 말을 옮긴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이런 말 사실 필요한 줄 아는데 누구한테 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한테 들어본 적도 없는 인생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르며 산다. 튼튼한 것인지 몰염치한 것인지, 덤덤하거나 용감하거나 그렇고 만다.

그러니까 대충 산다. 거기까지 일일이 챙겨가며 살만큼 정신도 여유도 마음도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없을까.


한센병은 나병이다. 키키 키린이 또 나온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나서 무슨 인연으로 나에게 이렇듯 속삭이는 말이 많은가. 우리는 살면서 만나지 못하고 이렇듯 끊어진 듯 이어진 세상에서 주고받는다. 그녀는 나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내가 받는 것은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그녀가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센타로' 사장에게 다가간다.

'도쿠에 씨는' 색조를 지녔다.

색은 가졌지만 가게 앞에 핀 벚꽃들의 색조에 다 흡수되어 버리는 색조 없는 센타로에게 도쿠에 할머니는 분위기를 입힌다. 웃음을 입혀주고 팥은 고와준다. 전화 한 통이면 배달해주는 그런 팥으로 도라야키를 굽는 인생은, 그게 아니지 않냐고 그러지 말자고 차분하게 팥을 젓는다. 나도 아이들에게 그와 같았으면, 그와 같기를, 소망했다.

스토리는 사람들이 짓고 입는 옷.

영화마다 스토리를 찾아서 깃든다. 밤이 다가오는 토요일은 늘 10년 전을 떠올릴 것 같다.

내가 지나온 날은 언제나 거기에서 시작했으면 한다. 저기 멀리서 저녁이 찾아오고 있어, 4살짜리 산이가 등 뒤에서 속삭이던 말, 그 말은 내 삶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빛이 난다. 색조가 핑 돈다.

작가의 이전글기도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