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월 정선 여행 3

길에서,

by 강물처럼

열흘이 지났구나.

그런데 오래된 김치에서 나는 맛이 난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그 시원하다는 맛깔이 아른거린다.

두 번째 이야기까지 적고 나서 그동안에도 여름날이 손에 들고 먹을 만큼 자른 수박처럼 몇 개 더 있었다. 여름날이 높아지기만 할 것 같아도 정선에서 우리가 했던 일 때문에 살살 눈치를 보는 것만 같다. 저 사람들은 여름을 겁내지 않는구나.


정선 여행이라고 쓰여있는 관광 지도를 다시 펼쳤다.

감자옹심이도 먹었던가, 강이는 곤드레나물밥을 연신 칭찬해 가면서 즐겼다는 것을 기억할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은 콧등치기 국수와 메밀 전병 같은 음식들을 우리는 다 잊어도 그해 여름은 포근하게 남아주기를 소망한다. 더웠어도 하나 덥지 않았던 하루 그리고 이틀, 우리가 실컷 젊었던 여름을 누가 가장 오래 간직하고 있을까. 아, 나는 벌써 올챙이국수도 한 그릇 시켜놓고 심심한 맛을 즐기고 싶다. 벌써 대촌마을 뒤로 흐르는 냇가를 따라 강원도 어디쯤, 정선에서 만 년도 더 살고 있는 조약돌하고 바람,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으면 좋겠다. 벌써 우리는 말복도 다 지나고 말았다.


내 나이 쉰 하고 한 살 더, 그러니까 몇 개월이냐, 589개월을 살면서 처음 동강에 빠져봤다.

내가 래프팅까지 처음 해봤다는 감격은 옆으로 밀어 두고 글쎄, 동강이라는 그 이름에 풍덩 빠져봤다는 것이 어디냐. 나는 분명히 동강에서 헤엄을 쳤다. 오, 즐거운 여름이었다. 기념비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산이하고 강이는 지금 시작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이냐, 아빠는 매년 여름마다 빠지지 않고 해 본다고 그래도 겨우 몇 번이면 여름 해가 다 가고 말 것이다. 추워지고 쓸쓸해질 것이다. 정말이지, 이럴 때 쓰는 말이 그거구나. 힝.

물은 흘러서 어디로 갈까.

바다까지 흘러서 다시 하늘로 올라 비가 된다고 하는데 엊그제 내렸던 비는 어디를 오랫동안 흘렀을까. 그 빗물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고향을 갖고 서로 다른 기억으로 여기에 그리고 내 머리에 떨어진다는 우연을 나는 왜 여태 무덤덤하니 여겼을까. 그래도 되는 것이었을까.

그거 하나 알려주고 싶다. 너희도 그렇지?

거기 한반도 모양처럼 보이는 거기를 동강이 휘돌고 지나가잖아. 대충 부산쯤이라고 할까, 부산 앞바다 정도 될 것 같은데, 거기에 용천수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 차가운 물이 펑펑 솟아나고 있다는 것을 동강에서 래프팅을 해본 사람들은 즐겁게 떠올릴 것이다. 제주도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그랬잖아. 우리도 그 물을 손으로 받아먹었잖아. 신기했잖아.

다음에는 아우라지에 가보련다. 아우라지, 나는 그 이름이 어른거린다. 가리왕산 근방에서 물길을 따라 흐르면서도 나는 아우라지를 떠올렸다. 왜 그럴까, 왜 그 이름은 나를 부를까. 다음에는 정선에 캠프를 치고 산에라도 올라봐야 하는 것인지, 나는 즐거워한다. 동시에 망설이면서 혼자서는 힘들겠다는 변명을 미리 적어본다. 아마 그 유명한 민둥산에는 올라봐야 한다고 나는 모른 척 뒷짐을 지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가을일까, 다시 여름일까. 질문이 없던 내가 말이 많아지는 땅, 정선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너희는 다 모르겠지만 그래서 동동거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꽃밭을 키우겠지만 나는 걷고 싶은 것이다. 운전하고 싶고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을 오래 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암 癌이었지 않았냐. 내 속에서 나는 그것을 잘라내지 않았냐. 그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미안해하고 허전해하지 않았더냐. 내 뱃속은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 내 뱃속에 채워 넣을 것은 달라야 한다. 그래서 징검다리를 세 번이나 그 아침에 건넜던 것이다. 물이 졸졸 흐르는 그 동네를 햇볕 아래에서 찾아가며 미안하지만, 미안하면서도 나는 좋았다. 거기 소나무 하나가 서 있는 곳에서 산이 뒷모습을 찍어놓고 나는 좋아라 했다. 작품이다. 내가 본 작품이어서 좋았다. 나는 삼시 세 끼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원빈이나 이나영이 거기에서 결혼했다는 것도 금방 남의 일처럼 여길 것이다. 다만 핑계라도 대면서 그 땅을 한 시간, 두 시간쯤 일부러 걸어보고 싶었다고 고백하자. 넘실댄다. 7월 끄트머리에 충만했던 바람이 8월 열 하룻 날에도 간지럽다. 대신 바람 끝에 가을이 슬슬 하나씩 옮겨 오고 있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


자고 나면 커버리는 아이들아, 자고 나면 오늘은 여기를 봐라. 지나간 것을 잘 모르는 나이에도 좋았던 것과 그리운 것을 챙길 줄 아는 기술을 배우기로 하자. 어디에다 쓸 것이냐. 너희의 그 작은 날들, 빛살로 빚어 놓을 그 여름날을 어디에서 생생하게 구워볼 것이냐. 일기를 써라. 日記가 되어라. 덕분에 좋은 날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나이를 잘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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