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whoever is happy will make others happy.
꼭 행복해야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살짝 어깃장을 놓고도 싶은 말입니다.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그 말이 사실인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여기서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냐, 저것은 어떠냐, 어떤 것이 싸냐, 뭐가 이익이냐, 그러고 있습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종류의 표정들이 있습니다.
그 표정들은 웃음일 수도 있으며 울음일 수도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만난 표정이기도 하고 공항에서 봤던 표정이기도 합니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는 공부를 하다가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그러고 보니 십 년쯤 전에 지리산 자락 인월에서 금계로 가던 길에 봤던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산새 소리만 들렸었던지 그마저도 없었던 것 같은 해거름에 혼자서 밭을 매던 할머니는 선한 표정이셨습니다.
얼굴은 못 알아보더라도 그 표정의 느낌은 여전히 저에게 남아 이렇게 가끔 꺼내보게 합니다.
어쩌면 저는 표정을 공부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의 표정, 길, 사람, 또는 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한 권을 읽고 덮으면서 그 표정과 비로소 만남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소개팅 같은 것, 어른들 식으로 말하자면 맞선 같은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마음에 쏙 드네, 여기는 실망인데, 그래도 이만하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구나, 등등.
어제 하늘은 표정이 사뭇 거룩했던 거 아실까요.
금강도 푸르렀고 하늘도 그랬습니다. 하늘이 강에 비칠까, 강이 하늘에 포근히 안겨도 좋을 것 같은 대비였습니다.
저는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그 표정 또한 마주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쁜 것만 예쁜 것이 아니고 예쁘게 보이게 만드는 그 예쁨, 그런 말이 혹시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예쁘게 만든다. 그런대로 첫 줄에 적은 말하고 맥이 통하지 않으십니까.
사랑받아 본 기억이 사랑을 품고 그것을 부화시켜 알을 낳습니다.
그렇다고 사랑받아 본 적 없는 이들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의 노력은 더 힘들고 가치 있으며 벅찬 일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다만 꽃이 피기까지 남모르는 떨림을 스스로 겪어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많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 도와줄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고백까지도 거기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6
사람마다 그 해석이 분분할 것입니다. 그래도 좋은 것이 바탕입니다.
무엇이든 바탕 위에 놓입니다. 마음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사람의 탄생 또한 그렇습니다.
들꽃은 들판을, 새는 창공을, 나는 세상을 배경으로 그 바탕으로 두고 있습니다.
들판이 꽃을 가리지 않고 창공이 새를 나무라지 않으며 세상은 늘 거기에 있습니다.
해석은 바탕의 몫이 아니라, 바탕이 남겨놓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림이기도 하고 글이면서 음악, 여행, 하여튼 모든 재능입니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처럼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그것 하나면 된다는 것. 하나씩만 나눠 갖자는 것.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하늘을 섬기는 일은 예뻐지는 일입니다.
예쁨이 나에게서 솟는 일상입니다.
내가 예뻐지고 그런 나를 보고 좋아해 주는, 연애 戀愛 같은 일.
마침 창가 가까이 와서 새가 지저귀고 있습니다.
날이 다 밝았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