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부러운 것
쌈밥은 언제 어디에서 먹어도 맛있다.
여러 가지 채소로 쌈을 싸 먹는 일은 몸에도 좋고 입이 즐겁다. 날 것이나 생 것을 그대로 먹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쌈채소만은 양보하기 힘들다.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에 잠시 담갔다가 깨끗한 물에 헹군 뒤 밥상에 오르는 상추며 당귀, 깻잎 같은 것들을 보면 입맛이 저절로 돈다. 아삭하고 촉촉한 물기가 입안에 감돌면서 밥과 쌈장이 적당히 어울리면 밥 한 공기는 금방이다. 거기에 불고기라도 내놓으면 한참 커가고 있는 산이에게는 그야말로 사냥감이 된다. 여름에는 더 맛있는 맛이다.
나는 왜 향기가 나는 채소들이 유독 끌리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른 채소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고기는 상대적으로 금방 입이 닫히는 편인데 우리 집 채소는 내가 거의 다 해치운다. 수술 후 청양고추를 더 이상 못 먹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대신 양파를 먹을 수 있고 조금씩이지만 마늘도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깻잎의 그 향긋한 내음이 입안에서 머리로 퍼지는 감각을 좋아한다. 물론 당귀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어떤 것, 예를 들면 새벽에 들리는 산사의 종소리라든지 영롱한 이슬방울 속에 담긴 고요한 성정 性情 같은 것들을 당귀는 저를 구성하는 원료로 잘 배합해 내는 채소가 아닐까 상상을 하게 만든다. 어디에서 이런 맛을 낼 줄 알았을까. 겨자하고 와사비는 다르긴 한데 솔직히 초밥, 정말 맛있는 요리 아니던가. 그 심플한 세계에 감춰진 세밀한 맛의 비밀들이라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번지면 끝이 없을 것 같다. 톡 쏘는 매운맛이 그 향기와 또 어울리는 청겨자도, 비타민 C가 많아서 좋다는 로메인, 쌉쌀한 맛이 나는 적 쌈배추도, 쓴 맛이 나는 치커리도 다 좋다.
무엇하나 신세 지고 살지 않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밥상 위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살면서 돈을 빚지는 사람들도 많고 때로는 목숨을 빚지는 일도 있을 만큼 사람들은 공생한다. 누군가에게는 고맙거나 미안한 마음이 산처럼 높아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산다. 마음을 빚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말을 외국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 사람이란 말하고 사랑이란 말을 나란히 세워놓는다. 닮았으면서 다른, 다르면서 닮은 그 둘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상대방도 흥미로워한다. 그 이야기 다음에 등장시키는 것이 빚하고 빛이다. 빚을 빛으로 만드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건넨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빚지고 살지만 우리가 빛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면 웃는다. 빚 속에 빛이 있다고 하면 신기해한다. 나는 건강을 빚진 사람이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빚졌고 의술에게도 빚졌으며 세상에 빚졌다. 그래서 쓴다. 쓸 수 있을 때 쓴다. 아이들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아침 묵상을 쓴다. 쌈채소도 빚이고 그 밥을 더 맛나게 해주는 쌈장도 다 빚이다. 그래서 고맙게 먹는다.
이제 호박잎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에 싸 먹는 밥맛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것은 연한 초록 잎이 여름 볕을 쬐고 만든 영양이다. 호박을 키워내는 그 무지막지한 인내였으며 밤과 낮으로 뿜어 올린 대지 大地의 기운이다. 호박잎을 싸 먹고 있으면 외갓집 툇마루가 씹히고 거기 마당에서 피어오르던 모깃불이 살살 퍼져 온다. 나는 열 살이 되었다가 김치를 죽죽 찢어 숟가락에 올려주는 외할머니를 흘겨보기도 한다. 모든 것들을 그 여름날 저녁밥 먹던 때로 몰고 가는 호박잎을 어제 아침에 먹었다. 산이와 강이는 아직 호박잎은 손대지 않고 지금을 지나고 있다. 언젠가 너희도 그 맛을 입에 담고 내가 외갓집을 떠올리듯이 너희도 이 집을 떠올릴까. 내 추억은 너희에게도 옮겨가지는 못하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또 적어둔다.
"강이야, 한자 쓰기는 다 했냐?"
"아빠, 나는 한자 그런 말 들으면 부모님들이 부러워."
"부러운 것이 없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부럽지 않으면 세상이 심심해질 것 같은데?"
그때 호박잎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호박잎을 펼치고 밥을 조금 얹어서 된장을 발랐다. 일부러 작게 말았다.
"한번 먹어볼래?"
강이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나는 부러워할 것을 부러워하는가.
지금부터는 물도 씹어먹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던 암병동 그 젊은 레지던트는 이제 어엿한 의사 선생님이 되었겠구나.
5년 전 여름이었다. 그때에도 나는 무엇인가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때 부러워하던 것을 지금도 부러워하는지 묻고 싶지만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잊었다. 세월은 그렇게 가져갈 것을 가져간다.
여전히 부러운 것, 그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