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52

아침에,

by 강물처럼


혼자 산길을 걷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잠시 함께 걷습니다.

신기하게도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고 소식을 알지 못하는 옛날 사람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한 번은 꼭 만나봤으면 싶은 사람도 있고 만나서 그때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분들도 이따금씩 생각이 납니다.



마트 사장님이 떠나고 그 사이 2년, 다시 여름이 가고 가을입니다.


가을날, 하늘이 무진장 파랗게 펼쳐진 날에는 둘이서 고창 방장산에 올랐던 날을 회상하곤 했습니다.


이 앞을 그렇게 지나다녔는데 오늘에야 여길 올라왔다는 그 목소리에 실려있던 가을이, 가을이 되면 다시 듣고 싶어집니다.


사람과 사람은 추억을 남겨야 하는 것이 아무래도 옳은 듯싶습니다.



마트 사장님이라고 적은 이름에 낯선 사진이 게시되었습니다.


갓난아기를 앞에 눕히고 있는 젊은 엄마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쓰던 번호는 이제 다른 사람 번호가 된 것입니다.


물끄러미 엄마와 아기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지구의 공전을 떠올렸습니다. 계절의 순환 같은 말이 허공에 떠도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전화번호를 지울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예의상으로라도 지워야 할 것 같았습니다.


추억도 가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안녕하시냐고 그러면 잘 있을 것 같냐고 웃으면서 따지실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산에나 더 다녔을 것을 그랬다며 헛헛해 하실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 해줄 말이 있습니다.


늘 충분했으며 늘 부족했다고. 그래서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고.


텅 빈 방 안에 빛이 가득 든 오후를 바라봤던 소감을 언젠가 담담히 전할까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나눴던 대화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장님, 언제든 마음이 들면 말씀하세요. 성당에 다니지 않으셨어도 신부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실 겁니다."


새벽에 내 옆에 와서 등을 보이며 주물러 달라던 그 목소리도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살지 않아서...."


그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던지 다 말하지 못해도 잘 알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는 이제 가을 속으로 떠나보내고 좋았던 일들 떠올리면서 오늘처럼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기도라도 하겠습니다.


여전히 성경책을 읽지 않으실 테니까 오늘 복음 가운데 있는 한 마디만 여기 적어놓겠습니다.


언제든 생각이 들거든 주머니에 넣어 두세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 19:27



작가의 이전글기도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