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도로변으로 차들이 꼬리를 물고 주차되어 있습니다.
명절은 도로 위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차들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찾아왔을 마음도 생각합니다.
마음과 생각, 그 둘은 미묘합니다.
가끔 그 둘을 만지작거리면서 어떻게 인간은 그 둘을 구분하기 시작했을까 신기해합니다.
상당 부분 공통 영역을 갖고 있는 말들이어서 분명하게 선을 그어 그 차이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이 일란성쌍둥이 같은 말들을 나누시나요.
재미있습니다. 서로의 방법을 공유한다면 더 흥미롭고 튼튼한 건물이 지어질 것 같습니다.
속과 겉, 안과 밖은 모든 것들의 존재 양식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있습니다.
죽음은 죽음이란 말과 함께 존재하고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말없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머물기 전에도 공기 중에 산소는 있었을 테지만 사람이 있고 나서야 그것은 산소가 되었습니다.
죽음이란 말이 사라져도 죽음이란 형태를 목격하면서 슬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를 말이 없으면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한 죽음과는 다른 죽음이 될 것입니다.
죽음 같은 죽음이 아니라 다른 죽음, 예를 들어 가을이나 하늘, 바다 같은 죽음이라고 떠올릴 것입니다.
마음은 죽음 자체이고 생각은 그것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다양하게 불릴 수 있습니다. 요즘 개명하는 것도 유행인 듯한데 만약 세상의 다른 것들도 - 하늘이나 구름, 바람, 빵, 기차 등등 - 한 번씩 이름을 바꿔준다면 어떻게 될까 싶습니다.
똥은 오래 똥으로 살았으니까 밥으로 한 번 바꿔준다면 밥이 단식 투쟁할지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는 제가 어쩌지 못할 일이니까 놔두고, 우선 생각과 마음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비슷하지만 이렇게 써보면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많은´이라는 말을 그 앞에 써보면 생각은 어울리는데 마음은 영 그 모양이 어색합니다.
많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많은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마음은 원래 ´많은´이란 형용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쓸쓸한 마음, 기쁜 마음, 슬픈 마음, 넉넉한 마음,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깁니다.
마음은 생각의 안이 되며 생각은 마음의 바깥이 됩니다.
또한 동시에 마음의 안은 다시 마음이 되며 마음의 바깥은 다시 생각이 됩니다.
누가 나에게 종교를 보여달라고 하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 마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생각의 생각을 살피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라며,
국을 떠먹으면서 시원한 맛이 난다는 거짓말 같은 참말과 닮은 것 아니겠냐며 웃어 보입니다.
그러면서 먼저 마음을 여기 보여달라며 넌지시 손을 내밀어 봅니다.
마음이나 생각 하나를 잘 잡아보고픈 계절입니다.
추석.
명절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한길로 샜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을은 뭐니 해도 달빛 아닐까 싶습니다.
은은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