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중간고사가 시작됩니다.
언제 하늘이 가장 보기 좋냐고 물으면 저는 중간고사 볼 때라고 말합니다.
방금 세수한 청년의 얼굴을 닮았다는 5월 하늘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방이 벚꽃으로 한가득인데 시험을 본다니, 그처럼 균형감 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10월은 노랫말처럼 더는 소원 없어도 좋을 것 같은 높고 맑고 푸른 공중에 구름마저도 싱그러워서 사람을 밖으로 밖으로 불러냅니다.
그런 때에 우리나라의 모든 중, 고등학교, 대학생들은 시험공부를 합니다.
그야말로 현실감이 결여된 영상을 보는 듯해서 더 이상 학생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는 하지만 중간시험을 마치면 현장 학습과 체육대회가 학생들을 달래줍니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가 되어서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학생들 수가 적어져서 예전보다 대학 가는 일이 수월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학교별 서열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경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수능 시험보다 내신 성적으로 학생들을 뽑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학생들은 하루도 방심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긴 해도 분명 긍정적인 작용 또한 기대가 되는 부분이 거기에 있습니다. 교과 성적 하나만 들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대학 공부에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함양시킨다는 취지를 살린다면 학교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피워내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현실과 이상이 서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지만 누가 뭐래도 교육이 제대로 서야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희망도 거기에서부터 자라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응원합니다. 학교가 잘 되고 학생들이 행복하길 응원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카 9:48
삶의 현장에서 곧잘 마주치게 되는 경우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 - 누구에게나 있는 그 사람, 지금 떠오르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나를 망설이게 하는 그 자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못났거나 나쁘거나, 혐오스러운 사람입니다.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결국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성가가 오래 마음속에 남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내가 만나는 그 작은 사람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큰 사람 보듯이 바라보고 싶습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큰 사람인지 미안해하면서 고마워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