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따라 오던 산이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너는 왜 걷냐?"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초록 융단처럼 질경이가 길에 가득했습니다.
온 산에 것들이 머리를 감고 방금 세수를 마친 얼굴들이었습니다.
반짝거리는 것들이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습니다.
"딱히 이유가 없는데."
엷은 웃음이 났습니다.
아빠가 ´걸으라고 했잖아´ 그렇게 답하면 어쩔 뻔했나 싶었기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는 아이의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고개도 넘고 언덕도 올랐는데 너는 내 편을 드는구나.
그것이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물음 그대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나 더 가져다 붙였습니다.
"이유는 없어도 할 말은 있어야지."
아무 뜻이 없더라도 여운을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길이 예뻐서 그랬을 것입니다.
말은 공중에 흩어져 사라져도 그 말이 남긴 것들이 자랄 것입니다.
그것은 씨앗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고 감성이나 추억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무엇이 되어 잘 커주는 것도 좋지만 그런 씨앗은 분명 ´어떻게´라는 다른 방식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아니, 뿌리가 아니라 방식으로 전달되고 전달되어 먼 데까지 여행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심는 것은 나무나 꽃이 아니더라도 나무나 꽃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방법을 심으러 다니는 사람이 맞겠다 싶었습니다.
실체가 없으나 실체인 것, 그것이 저는 좋습니다.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 11:40-41
쉬운 말로 속삭이는 자연 自然이 거기 있었습니다.
Life becomes infinitely easier when we remember to thank others for their acts of kindness.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친절한 행동에 대해 감사할 때 삶은 무한히 더 쉬워집니다.
이 말을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여고생에게 들려줬습니다.
아마 생각은 쉽게 자리 잡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순간은 바람직해 보였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고마우면 공부가 될까, 안 될까?
학교가 고마우면 급식이 맛있을까, 맛없을까? 학교 선생님은 마음에 들까, 싫을까?
우리 솔직히 인정해 보자, 조금이라도 고맙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것들이 사실은 고마운 것들이잖아, 잘 생각해 봐.
너는 집에서 학교까지 걷는 게 짜증스럽겠지만 그 거리를 걷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될 거다.
그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거야.
아이들이 돌아간 자리는 정적이 남습니다.
하지만 씨앗 같은 것도 남습니다. 그 씨앗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기분이나 희망, 아니면 조바심이나 걱정 같은 것을 품은 달빛이나 공기를 닮았습니다.
가을색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좋은 그것이 훨훨 날아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