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을 아까워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늘의 푸른 기운을 자주 눈에 넣고 싶어 합니다.
어떤 책은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기도 하지만 또 어떤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마저 시간을 들이며 천천히 짚어 갑니다. 눈이 손가락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전혀 불편해하지 않을 때, 눈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속도는 속도를 내고 술은 술을 마시고 자본은 자본을 점령하며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합니다.
속도가 속도를 늦출 때, 술이 술을 진정시킬 때, 자본이 자본을 위하고 사람이 사람한테 정이 갈 때, 모든 것이 천천히 흐릅니다.
시간도 공간도 인연도 제 박자를 즐기면서 그것을 노래할 줄 압니다.
둘러볼 줄 알고 돌아볼 줄 알고 음미할 줄 압니다. 그것이 ´즐기는´ 일입니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은 이벤트 맨이 아닙니다.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는 선물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남자가 아닙니다.
옛날 그 노래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모르는 나를 일깨워 주듯이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능력보다 소중하지요? ´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느냐는 순전히 당사자, 바로 내 몫입니다.
보조 步調 걸음걸이의 속도나 모양, 보조 補助 보충하여 돕는 것.
이 두 가지를 가장 잘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입니다. 하지만 식물이나 동물, 곤충만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닙니다. 어린 왕자도 세상 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찾는 사람이 없으면 멀리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잃는다´는 것입니다. 상실, 부재, 이별, 좀처럼 감당하기 쉬운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가르침이며 깨우침입니다. 나와 보조를 맞추는 동행은 나를 든든하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누가, 무엇이 그 길에 동행하는지요.
먼 길을 다닐 때 이처럼 좋은 부적이 따로 있을까 싶습니다.
종교가 써주는 부적이 아니라 어린 왕자가 그려주는 그림 같은 말씀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 하고 말하여라.> 루카 10:5
어느 곳에 가서도, 누구를 만나서도, 그것이 키 큰 소나무여도 아니면 어제처럼 갑자기 추워진 하늘 같은 것이어도 ´평화를 빈다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면 무엇에도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