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80

아침에,

by 강물처럼

아마 그러셨을 것입니다.


위에 적은 복음이 어떤 식으로 읽혔을지 대충 감이 잡힙니다.


사람들은 중요한 대목을 발췌하는 기술이 탁월합니다.


서로 공감한다는 말은 아름답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빛과 그림자는 동행합니다.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사실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끄럽고 번거롭고 골치 아픈 것들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 또한 사람입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평생을 선교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명이란 말이 비로소 어울리는 삶이 세상 곳곳에서 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빛은 달빛처럼 안온하고 별빛처럼 동화적입니다. 빛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표정이 있습니다.


솜털처럼 가벼운 웃음을 저는 봅니다.


가벼워야 물 위에 뜨고 가벼운 것들이 허공을 날아오릅니다.


저는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남습니다.


´아름다운 삶이었다´ 그럴 거예요.


그런 말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예전 같았으면 절대 이런 데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에 산을 몇 개나 건너뛰고 술을 마시면 유쾌해져서 세상이 호기롭게 보이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 ´암 같은 것´은 걸리지 않을 것처럼 ´건강했다´면 이런 대목에서 머뭇거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 루카 13:11



천천히 열여덟 해를 가늠해 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사람을 충만하게 합니다.


길을 걷고도 본 것이 없다면 다시 걷어야 할 텐데 다행히 여기, 이 부분이 걸리는 것이 저는 좋습니다.


여기가 여기에 턱 걸리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는 어디고 여기가 어딘지 다 아실 겁니다. 그것이 이심전심입니다. 그렇게 풀리는 것이 이해 理解입니다.


예수님은 전도 여행을 다니십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지키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서도 잘 지키십니다.


애정을 갖고 사람을 대하면 이렇듯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깨우쳐 주십니다.


가벼워지지 못하는 탓은 어쩌면 ´애정 결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에 대한 감사, 그라시아살라비다,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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