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8시 미사에 산이가 복사를 섰다. 일요일에는 오후 늦게 수업이 있다. 내년부터는 이렇게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시간과 일요일 낮동안을 즐기는 여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 7시 반에 식구들 모두 집을 나섰다. 미사에 참석하고 바로 아래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래쪽이라고만 정해놨다. 곰소에 가서 생선을 좀 샀으면 좋겠다는 산, 이 엄마 말에 그러기로 해놓고 딱히 다른 계획은 없었다. 오후 5시까지는 집에 돌아와야 했으니까, 지난해처럼 어디 마실길 한 코스를 걷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걸으면서 시간에 쫓기는 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걸을 때는 생각도 없이 풍경만 보고 싶다.
처음에는 격포로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콩나물 국밥'이 뭐라고, 나들목에서 직진을 선택했다. 부안을 지나치면 고창이 나온다. 늦은 아침이어서 배는 고팠지만 기름지게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격포 바닷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과 어제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했을 도로변이 떠올랐다. 오전 10시는 그 분위기가 아니다 싶었다.
30분쯤 더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은 우리에게 흔한 일이니까 핑계 삼아 고창에 들어섰다. 내 입맛은 아무래도 싸구려다. 고창에 그 많은 장어집을 놔두고 여기에 오면 먼저 들르는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물론 나에게는 남다른 스토리가 있다. 여기에 오면 마트 사장님이 생각난다. 맛있는 집이라며 우리가 둘러본 집이 어디 한둘이던가. 사장님은 그렇게 맛있는 집들을 내게 알려주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마다 그 맛에 반하면서 동시에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고마움을 얹어 먹는다. 국물이 뱃속을 수술한 나에게 딱이다.
산이와 강이도 잘 먹는다. 물론 애들 엄마도 맛이 좋다며 거든다. 그래, 어디로 갈까?
11시에 아직 목적지가 없다는 것은 하루를 헤매면서 보낼 거라는 명백한 조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하루다. 내 하루는 소중하다. 담양을 생각해냈다. 담양, 담양에도 마트 사장님하고 같이 갔었다. 그리고 산이가 아직 많이 어렸을 적에 두 분 어머니들도 동행했었던 죽녹원에 들러보기로 했다. 대나무 숲, 눈앞에 짙은 대나무 잎들이 예스러운 그림처럼 소슬거렸다. 24킬로는 그냥 가면 되는 거리다.
지난 4년을 다녔던 병원 앞을 지난다. 거기에서 나눴던 것들은 무엇이었나 - 사람들, 얼굴들, 목소리, 웃음소리, 식사하며 걸으면서 또, 또, 또, 그리고 지금은 없는 - 병원 뒤쪽으로 저 언덕을 영춘봉이라고 했던가. 그래, 봄맞이 언덕이었다. 방장산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달린다. 아무래도 고창은 내게 긴 추억이 되었다. 오래오래 기억하기로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적어두기로, 소감이나 감상까지도 자세하게 스케치하기로, 소묘 素描해 가면서 그들과 그들과 함께 였었던 모든 것들을 위하기로. 나는 글을 하나 꼭 쓰기로 한다. 방장산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아무도 모르는 다짐을 거기 놓아둔다. 내려가자, 이 길 위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깊은 가을날에도 다시 여기로 내려가기로 끄덕끄덕. 고운 것들이 빛을 맞이하는 아직은 오전 햇살이 먹먹하기도 한.
담양은 이름이 사람을 홀린다고 예전에 말했던 기억, 그 기억은 이제 누구와 공유할까.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그래,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만, 나는 달리느라 이것저것이 다 달리고 만다. 곧 페이지가 다 넘어가는 책으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내가 끄적거리는 것은 누구의 시인가.
대나무는 울창하고 허공에서보다 땅 아래에서 긴밀하고 빽빽할 것이다. 높다란 '온통'이 거기에 있다. 다 파란 것이 하늘이고 다 푸른 것이 바다다. 내가 디뎌본 적 없는 영토, 온통이라는 나라는 어느 지도 위에서 살고 있는 생명인가. 거기에 가볼 수는 있을까, 나그네가 되어서 그 땅에 당도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상에는 새가 되어야겠다.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수 만리를 날아가는 운명을 짊어지기로 한다. 대나무 숲에서 온통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연주를 마친 음악이 진동으로 저를 나를 깨끗하게 삼키고 그때 나는 날아오른다. 그리고 그때부터 날아갈 수 있음을 안다. 산이나 강이는 그것을 지나치면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다 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엄마하고 아빠라는 말이 그들의 전부였다는 것을 나는 증언한다. 책을 읽어가는 표정으로 살아가는 너희들에게 축복을 전한다. 나는 그 손에 쥐고 있을 펜이라도 되어볼까 싶다가 미소가 지어지는 것으로 오케이, 이너프 Enough.
국수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거기 들러 맛을 보라고 전한다. 이건 아무에게나 남겨놓는 메모다. 마침 내가 그 옆에 있으면 날개를 가진 것 아니었냐는 듯이 어느 집이 맛있더라도 일러줘도 무방하겠지만 부디 그것을 사양하기를 또한 바란다. 나도 다음에는 다른 집에서 다시 먹어볼 요량이니까, 그것이 작더라도 즐거울 수 있으니까. 아, 날개. 잠시 접어뒀던 것들을 펴고 서쪽으로 날아보자, 온통이란 하늘과 온통이란 바다가 맞닿은 멀리까지 내려다보면서 비행하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대나무였다가 국수 면발이었다가 의자, 그 의자에 보내는 세월이기로 하자. 소금꽃이 들판이었던 지천이었을 공간, 곰소에 가자.
우리가 걸었던 거기에서 거기까지는 첫돌을 맞겠구나. 지난해 11월 찬바람 속에서 마무리했던 마실길, 그 어깨쯤이었을까. 더 가더라도 좋을 것 같은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곰소에서 알았다. 저 해변을 돌아서 하루만 더 가면 끝이라는 말이 시린 듯 날리는 곰소항의 표정이 날 것으로 남았다. 물 비린 내가 올라올 것 같은 바다 위로 흐린 가을 하늘이 가득했던 날. 산, 이 엄마는 그날부터 여기에서 생선을 사고 싶어 한다. 이심전심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 피곤했다. 길가에서 잠시라도 잠을 자야만 했다. 너희도 피곤했었냐. 모두가 조용했다.
평양 호떡이란 안내판이 반가웠는데 장사하던 자리가 바뀌어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구나. 하긴 길가에서 장사하면 누가 좋아라 할까, 다음에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들러서 사 먹기로 하자.
일요일 짧은 하루를 길게 다녀왔다. 걷지도 못했고 쉬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만 아는 맛집에 다녀온 기분이다.
그 맛이 궁금하다. 아무리 물어봐도 그래서 친절히 가르쳐줘도 다 알아듣지는 못할 맛을 어떻게 적을까.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 그래 그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