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가 있던 집 /권대웅

시 감상

by 강물처럼


오늘은 망설이기만 합니다.

써지는 것도 없고 써지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대로 생각이 나지 않으면 권대웅의 시를 한 편 적어 보낼 생각입니다.


상강 霜降도 지났으니까 이 가을도 서둘러 채비를 할 것입니다.


보낼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은 늘 우두커니 지켜보기 마련인 듯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이 맞습니다.


늦게 와서 먼저 가버리는 가을이 얄궂습니다.


한때의 애인이었던 이에게 쓰는 편지는 저 혼자 망설인 흔적이 빼곡합니다.


잘 가라는 말도 잘 있으라는 말도 서툰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구절초하고 쑥부쟁이를 폼 나게 일러주며 웃었던 것이 꿈이었던가 싶습니다.


언제 이렇게 가을이 다 익었을까요.


밥 먹고 잠잔 것밖에 없는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추억이 없이 여문 이들은 언제 봐도 그늘이 들어있습니다. 노인이든 젊음이든, 애들 아빠나 누구나.


서러운 것이 가을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면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기고 가져갈 것 없이 낙엽은 질 것입니다.


무방비로 이별당하는 이 가을은 어쩐지 오징어 게임을 많이 닮은 것도 같습니다.



장독대가 있던 집 - 권대웅



햇빛이 강아지처럼 뒹굴다 가곤 했다


구름이 항아리 속을 기웃거리다 가곤 했다


죽어서도 할머니를 사랑했던 할아버지


지붕 위에 쑥부쟁이로 피어 피어


적막한 정오의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떠나가던 집


빨랫줄에 걸려 있던 구름들이


저의 옷들을 걷어 입고 떠나가고


오후 세 시를 지나


저녁 여섯 시의 골목을 지나


태양이 담벼락에 걸려 있던 햇빛들마저


모두 거두어 가버린 어스름 저녁


그 집은 어디로 갔을까


지붕은, 굴뚝은, 다락방에 모여 쑥덕거리던 별들과


어머니의 슬픔이 묻은 부엌은


흘러 어느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을까


뒷짐을 지고 할머니가 걸어간 달 속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달빛에 그리움들이 발효되어 내려올 때마다


장맛 모두 퍼가고 남은 빈 장독처럼


웅웅 내 몸의 적막이 울었다

작가의 이전글담양에 다녀온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