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한때 미국에서 피 한 방울로 모든 검사가 가능할 거라고 떠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국판 황우석 사건이라고 그러던데....
정수리에서 살짝 왼쪽으로 쿡쿡 찌르듯이 일어나는 통증이 있다. 독감 같은 것에 걸렸을 때 처음 나타나는 증상처럼 지끈거린다 하지만 그것은 독감 탓은 아니고 어제 맞은 폐구균 백신 때문인 듯싶다. 물론 모든 것은 내 직감일 뿐이다.
지난 5월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가 장내 상태가 완전하지 못해 도중 생략됐었다.
3년 전에 대장 내 용종을 절제한 적도 있고 위가 없는 탓에 대장에 대해 더욱 주의해야 할 입장이어서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았었는데 결과를 얻지 못하고 마쳤던 것이다. 사실 이번 건강검진의 포인트도 거기에 있었다.
전날부터 정결제를 마셔가며 속을 비웠다. 편한 일은 아니다. 밥을 굶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쯤 건강을 위해 시도해볼 만한 것이지만 두 끼를 굶고 나니 미열이 나고 집중이 되지 않으면서 자주 졸렸다. 하품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는 췌장 MRI도 찍었다. 인슐린이 만들어진다는 바로 거기도 나한테는 요주의의 장기다.
오전 시간을 다 들여가며 검사를 끝냈다. 한편으로는 피곤했지만 곁에서 동행하는 산, 이 엄마를 보면서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라도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형편이 또 다행이다 싶었다. 하나 더, 이번에도 7cm짜리 용종 하나가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발견되어 떼어냈다고 한다. 암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두 번이나 잘 다스린 것이다.
밤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마침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런 것,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하고 지나오는 사실들 - 그러니까 처음 '암입니다.' 그랬을 때 무엇인가 뒤통수로 지나가는 아차 싶은 감정들까지 - 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불을 쬐듯 앉아있었다. 그러게 그때도 보호자로 따라갔다가 검사받고 그렇게 알았잖아. 안 그랬어봐, 괜찮다고만 믿고 있다가 무슨 일이 어떻게 될지 알았겠냐고 서로가 의기투합했다. 그런 것, 지난 5월에 제대로 검사했으면 그때 알 수 있었을까? 지금보다 더 작았을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깨끗하다고 그랬다며 다시 몇 년을 보냈을 텐데 오늘 잘라낸 7cm짜리가 그때에는 얼마나 자라 있었겠는가, 그러면서 사는 일이 쉬운 것이 하나 없다는 약해빠진 소리도 곁들였다. 시끄럽게 굴 것도 없고 따지고 볶을 것도 없다는 말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 털어서 먼지만 나와도 잘 산 것 아니겠냐는 뚱딴지같은 말도 볼 만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 줄 알았다.
9시경에 의자에 앉아서 갑자기 느꼈던 오른쪽 옆구리 통증은 무겁고 둔탁했다. 배가 아팠던 적은 많았는데 옆구리는 처음이었다. 화장실로 옮기는 몇 걸음 동안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더 금식하라는 것을 도저히 어지러워서 누룽지 한 그릇을 먹고 난 뒤였다. 아, 통증은 무서운 얼굴이다.
배설할 것도 없는 배를 움켜쥐고 잠시 앉아있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편했다. 참지 못할 것 같으면 119다. 호흡을 깊이 하려고 노력했다. 천천히 통증이 옅어지는 것이 감사했다. 경험상 이러고 나면 좋아진다. 어쨌든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를 넘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안락한 강이 침대를 빌려 하룻밤을 온전히 잤다. 그때부터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긴 시간이었다. 새벽 1시쯤에 깨어 화장실에 다녀오고 다시 몇 번을 뒤척거렸지만 편안했다. 아침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운이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쓰지 못한 일기를 쓴다. 묵상을 대신하는 일기도 될 것이다.
강이 방에는 여러 가지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강이는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소설도 쓰고 있다. 좋겠다.
눈에 들어오는 네모난 카드가 하나 있다. 웃음이 난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4
좋은 날이다.
그냥 그래서 좋은 것, 10월의 어느 멋진 가을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