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86

아침에,

by 강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닷가에 가면 모래밭에 앉아 크고 튼튼하게 집을 하나 쌓았다가 한 움큼씩 덜어내는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가운데 깃발을 세워놓고 누구 차례에서 그 깃발이 쓰러지냐가 전부인 게임입니다.


깃발만 남기는 것입니다.


끝으로 갈수록 살살 조금씩 모래를 걷어냅니다.


상대를 위기에 몰아넣기 위해서는 과감하거나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다 덜어냈을 때 깃발처럼 내게 남을 것은 무엇인지요.



어느 날은 복음 말씀이 하나의 유언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직하고 있는 유언이 없습니다.


스물네 살부터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며 살아온 듯합니다.


가까웠던 이, 친했던 이, 나보다 나이 많았던 그리고 나보다 어렸던 이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대신할 수 없는´이라는 느낌을 저에게 남겼다는 것입니다.


떠나고 나면 자리가 남습니다.


방금 일어선 자리에도 공동 空洞이 생겨납니다. 텅 빈 굴 안으로 말이며 형형했던 눈빛이며 고운 숨소리도 다 사라져 버립니다.



언젠가부터 유언 하나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세상을 떠난 사람들한테 사랑받았다는 어떤 것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모두들 아무 때나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란히 걷고 차를 마시면서도 내일 이야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희망이 희망적이려면 징검다리 같은 질감을 가져야 하는데 구름같이 ´다음에´, ´이다음에´만 뭉게뭉게 피워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사람을 덜 아쉽게 합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 마태오 25:10



살아가는 일, 삶은 어떤 것입니까.


신랑도 처녀도 혼인 잔치도 문이 닫히는 일, 준비하고 있는 일, 그 모든 것들이 ´사이´라는 시간에 깃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사는 시간은 평생이 아니라 오히려 ´間´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사이´가 맞습니다.


홀연 한 사이, 홀로이면서 걱정이며 새벽인 듯 어둑어둑한 말, 문득이거나 갑자기 그러다가도 황홀한 순간이 되기도 하는 말.


사이에서 사이로 걸어가는 일은 넓은 광야나 대지를 기억합니다.


틈에서 솟아나는 물은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지혜는 그와 같습니다.


넓은 곳으로 나가는 빛이며 물은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운동, 에너지, 열정, 열기, 심장을 구합니다. 물이 갈증을 내고 열 熱을 구합니다.


그래야 희망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것을 여기에서 발견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마태오 25:13



11월은 통째로 마음에 드는 달입니다.


물이 낙엽으로 검어지는 달을 오래전부터 사모했던 듯싶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꼴딱 넘어가는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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