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89

아침에,

by 강물처럼

인터넷에서 마주치게 되는 말 중에는 우리가 배운 것과는 정반대인데 공감이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대신 거기에 빠지지 않게 중심을 잡고 들여다보시는 겁니다.



- 편한 사람이 되려고 하다가 편리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 사회생활이라는 게 별 거 있나. 욕 나오는데 웃고 있으면 그게 사회생활이지.


- 나쁜 걸 참다 보면 좋은 걸 잊어 간다.


- 맞춰 주려고 노력하면 막 해도 되는지 알더라.



어떠신가요, 그 밖에도 더 있는데 우선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끄덕거리게 되던데요.


조금 재미있기도 하지만 역시나 우울한 색으로 칠해진 말 몇 개 더 소개합니다.



-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이따가도 없고.


- 퇴근 후에 회식이라뇨. 회식 후에 퇴근이겠죠.


- 고된 하루가 떠났다. 힘든 내일을 남긴 채.



인터넷 조회수도 꽤 되지만 그보다 공감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나이 들면서 ´ 속으로´ 하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속으로 계산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욕하는 일들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러니 그 속이 제대로 남아날까 싶습니다.


쓰리고 아프고 뒤틀리는 일은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


수고 많다, 내 속이여!



언젠가 그런 말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그 앞에 서면 우물쭈물 망설이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서, 참 힘 있는 말이지만 용기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보듬기로 하면 그만한 자유가 또 있을까 싶다고.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자신감을 키웁니다. 그리고 충만합니다. 물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입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우선순위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저도 거기 어딘가에 서서 자리를 지키느라 아침에도 저녁에도 발을 동동거리고 있습니다.



음, 이렇게 말하면 공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공감이 중요하긴 한데 공감을 얻지 못할 때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 옛날 갈릴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직도 두꺼운 성경 안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한´이라는 형용사를 가지고 다니다가 어떤 것이든 만나는 것들에게 대어 봅니다.


그게 신기하면서 흥미롭습니다.


가난이 어울리는 것을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가난하면서도 가난이 어울리지 않는 가난을 볼 때 서로 시선을 피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 모든 일에서 용기백배할 것인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루카 6:20



바로 며칠 전에 적어 보냈던 그 말씀입니다.


가난해서 소중한 것을 건넵니다.



노유정 씨가 TV에 나와서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데 딸이 친구를 데리고 온 거야, 나는 해줄 것도 없고 당황스럽더라.


친구가 가고 딸에게 물었지. 창피하지 않냐고, 친구들이 다 알 텐데 그래도 되냐고?


우리 딸이 그때 했던 말이 나는 절대 잊히지 않아.


엄마, 그런 것을 창피해하면 친구가 아니에요, 그런 친구는 친구가 아니잖아요.



뜨겁고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잠을 자기 좋은 계절인 듯싶습니다.


조금 더 잠을 자다가 깨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적다가 ´가난한´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딸아이가 잘 살아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어제보다 더 생생해졌습니다.


저도 용기를 좀 내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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