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88

아침에,

by 강물처럼

´나도 몰랐어, 이것은 샘 같은 거야. ´



오후에 시작하는 제 일과는 저녁 늦은 시간에 마칩니다.


덕분에 아침에는 산책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또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면서 보냅니다.


대신 약속이 없는 일상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불편은커녕 고마운 생각이 큽니다.


나름 ´괜찮은´ 비정규직이라며 내 자유를 만끽하는 편입니다.


그중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곁에서 돌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침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에 저는 수술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큰일이어서 큰일이었지만 저렇게 보면 또 다행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티격태격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조바심도 내고 속이 좁은 아빠가 되어 사사건건 간섭도 했습니다.


부대끼며 산다는 것을 아마도 ´실천´ 했던 듯싶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저는 반쯤 전업주부 主父가 되었습니다. 가끔 서열 이야기가 나오면 제 한마디로 정리됩니다.


서로 자기가 제일 밑이라고 투덜대다가도 곧 잠잠해집니다. 마법의 말은 이것입니다.


´설거지하는 서열 1위 봤어? ´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기억하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둘 중에 하나이거나 둘 다 일 것입니다.


하나는 설거지하는 뒷모습, 다른 하나는 책 읽는 거. 그 두 가지 사이를 오며 가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초록이 짙어지고 아이들은 자랐습니다.


열다섯, 열둘이면 다 자란 셈입니다.


그동안에도 아이들 일기는 계속 썼습니다.


스무 살까지 쓰고 나면 서로들 어떤 사람들이 되어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잠시 테이블에 앉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경이나 아침 묵상,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대장이나 소장, 그러다가 유산균, 거기에서 어떻게 애들 이야기로 넘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여간 성경이 나오는 대목에서 제가 그랬습니다.


´나도 몰랐는데, 확실한 것은 그래. ´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 - 논어나 장자, 불교의 경전, 성경 같은 책들 - 은 책이 아니다. 책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면 지금 사방에 둘러 싸인 이것들이 책이 아니든지. 만약 내가 내 일상을 받아 적었다면 생각이란 것이 이처럼 꼬리를 물지 못했을 것이다.


´복음´에 나온 내용들이 반복되는 거냐고 묻는 질문에 그렇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게 그렇더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것이 거기에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번 다른 맛과 향, 정취까지 그 물속에 함유되어 있는 것 같다. 저도 어디까지나 감각으로 느낄 뿐입니다.


2천 년 세월을 내가 필사한 몇 년으로 알아본다는 것은 어림없습니다. 영영 못 알아볼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중국의 실크로드, 로마의 아피아 도로, 미국과 러시아의 대륙 횡단,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의 우수아이아.


거대했다가 소박해지는, 역사였으며 일상이었던 길과 같은 글을 걷는 기분입니다.



오늘 그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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