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93

아침에,

by 강물처럼



사흘 밤낮으로 찬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11월인데 바람은 거세고 빗줄기는 마른 종아리에 닿는 회초리같이 맵습니다.


아프지 않은 데가 없이 후려치는 것이 장난이나 연극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챙기고 꼭꼭 창을 잠그고 커튼도 깊이 내렸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 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



193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니가타현에 있는 시미즈 터널을 통과합니다. 니가타는 쌀이 좋고 물이 좋은 곳입니다.


그 좋은 쌀과 물로 빚는 술은 또 얼마나 좋을까요.


외국인인 내가 니가타를 동경했던 이유는 겉멋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던 날이 있었습니다. 젊은 날이었습니다.


동해 東海가 출렁이고 일본해 日本海가 출렁이는 현장이었습니다.


사는 게 소설 같아야 한다고 궁리하던 젊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줄을 그어 놓고 거기에 가면 어디가 나올까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바다도 건너고 땅에 닿고 하늘도 다 품 안에 그려 넣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요.


문학이 어려워진 것은 바다 때문이었는지 내가 닿지 못한 땅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나도 긴 터널을 지났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터널을 지났고 나는 돌아왔습니다.



1995년 니가타에 찬바람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동경으로 가야 할 사람이 니가타 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술을 마셨습니다.


술이나 사 오면 좋겠다는 말에 그러면 여기 ´단보루´ 안에서 하루만 머물 수 있겠느냐고 거래를 텄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외국인인지 무엇인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내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둘이서 컵에 담겨 나오는 술 몇 개를 마셨습니다.


가느다랗게 눈발이 흩날리는 오후였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몇 살이 되었을까요.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문학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셈을 잘한다고 해서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것은 상상력의 결핍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게 멀리 뻗어갈 수 있는데 그게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는 일 자체에 동력이 딸렸습니다. 쿨쿨거리고 쿨럭쿨럭 헛바퀴 돌면서 금방 다시 멈춰 서는 발동기 같았습니다. 그러니 어디를 갈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거야말로 슬픈 장면입니다. 망망대해에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떠다니는 모습은 신산스럽습니다. 내 터널은 바다였던가 싶습니다.



아침 묵상이랍시고 계속 써 간다면 나는 어디쯤 다다를까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터널을 다 지나서 만나는 곳은 나의 설국 雪國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바다, 11월의 바다, 그 위를 걸어가는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면서 쓰고 배우면서 갑니다. 여기까지 읽고 있는 그 눈동자들이 저에게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돛이 되고 깃이 되며 노가 되고 삿대가 되어 등을 밀어주고 앞에서 길을 열어줍니다. 마치 기도가 기도를 살피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글을 쓰시는 듯합니다.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루카 17:19



비가 그치면 더 많이 쌀쌀할 것 같습니다.


따뜻한 차 茶를 앞에 놓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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