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94

아침에,

by 강물처럼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루카 17:25



과거에도 그랬으며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고난을 겪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이 인지상정 人之常情입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게 되는 정서나 감정 같은 것입니다. 흔히들 인정 人情이라고 하는 그 말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져야 하는 보편적인 태도나 자세, 마음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사람은 인정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그대는 그중에서도 인정 많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들이 인정에 들 수 있을지요.


배고픈 것이 본성이라면 배고픈 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 또한 본성이 하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이나 사흘을 굶으면 덤벼듭니다. 그 덤벼드는 자세에 우리의 인성은 꽃으로, 조각난 부등가리 같은 것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날을 세운 쇠나 철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인성은 ´보라,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종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배고픈데 인정사정 볼 것이 뭐가 있냐고 그러면 그렇게 끝이 납니다.


바쁜데, 정신없는데, 내 것이 다 날아가는데, 내 새끼가 아픈데, 이렇듯 세상은 꽤나 매몰차기도 합니다.


내가 일부러 차리지 않으면 누가 대신 차려줄 밥상 같은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흐트러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순간, 그것을 허용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됩니다.


세상의 일이란 애초부터 나와 큰 상관없이 운행되어 가던 노선대로 공전하고 자전할 뿐입니다.


저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운명에는 사람의 냄새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특히나 시대의 분위기가 운명의 옷이며 장신구로 치장하기를 좋아해서 조금 어여쁜 것도 조금 안타까운 것도 내비치지 않고 무심한 듯, 늦가을에 봄날을 바라보듯 합니다.



그러니 ´먼저´ 고난을 겪어야 하는 저 운명이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것을 부러워하는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러운 것이 많으면 지는 것이라는데, 거기에도 사람들이 채 미치지 못하는 신성 神性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조물주의 형상을 따라 세상에 왔던 듯싶습니다.


거지는 임금을 부러워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거지를 부러워하는 임금이 있을 수 있다는 데에 우리의 생각은 다다르지 못합니다.


일방적이거나 직선뿐이었다면 세상은 오래 돌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회전한다는 말이면서 동시에 주고받는다는 말이 됩니다.


음이며 양이란 말로 다시 고쳐 말해도 얼른 이해가 됩니다. 그와 같은 곳에서 다른 존재의 숨결을 깨닫게 됩니다.


길모퉁이를 돌아간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는 일, 언덕 배미에 올라 멀리 떠나는 버스에 손을 흔들다가 흔들다가 해가 다 저무는 일은 하늘을 닮은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싶습니다.



가장 무거운 이슬이 맺히는 입동 닷새 전에 가장 가볍게 작별을 고하는 잎새들을 바라봅니다.


누구의 고난을 시청하는 기분입니다.


늦가을의 정취는 떠나는 그러면서 떠나보내는 마음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처럼 몽실합니다.


떠나면서 떠나보내고 있는 나를 나는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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