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것들 /공광규

시 감상

by 강물처럼

오늘은 날렵한 날, 숫자로 적으면 기분도 가벼워지는 날, 1111, 11월 11일이다.

산이나 강이는 빼빼로에서 관심을 걷어낼 수가 없다. 오늘 주고받는 빼빼로는 관심이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이런 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 같은 이런 날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왜일까 싶었다.

크고 멋지고 근사한 것은 좋더라도 부담이 가니까. 그것은 한 번만 그래 주는 것으로 족했으면 싶은 맘도 있으니까.

마치 냉정과 열정 사이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아니, 영화도 좋지만 그런 감정들 사이를 오가는 감정 말이다.

강이네 담임 선생님은 메시지를 보냈단다.

학교에 빼빼로 가져오지 않도록 부탁드린다는.

누군가 공평하지 못한 현실에 상처 입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고 좋은 마음이다.

11월은 겨울 같으면서 가을이고 가을이면서 겨울 같은 달이어서 나도 선생님 마음에 조약돌 하나 얹는다.

늘 11월 11일이면 이렇듯 미안해하는 일 없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든 빨갛게 오른 단풍잎이든 다 가져오기로, 환영하기로. 내년에는 부디 그러하기로.


강이는 제 친구들 것을 가방에 챙겼다. 교실에서는 꺼내지 않기로 엄마하고 약속까지 했다.

나한테도 하나 미리 건넸다.

어젯밤에 나도 하나 받은 것이다.

누가 맨 처음 나한테 이런 것 줬던가, 떠올려보자니 새삼스럽고 가을빛만 생각난다.

강이가 준 빼빼로는 입구를 다시 풀칠한 자국이 손에 만져졌다. 찐득거리는 뭐가 엄지 손가락에 묻었다.

웃겼다.

"너, 이거 먹던 거, 나 준 거네?"

저도 웃는다.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된 것이 좋다.

누구한테 그러겠느냐, 누구한테 그래 보겠느냐.

종이 상자를 뜯고 봉지가 나왔다. 그건 틀어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나 보다.

빵꾸가 뻥 뚫린 채 사랑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 집어 먹었다. 또 하나 먹었다. 또 하나 먹고 맛있는 줄 모르면서 맛있는 것을 알았다.

고마운 성장이 거기 묻어 있었다.

늦가을 밤이 황홀했다.

공광규의 시처럼 속 빈 과자하고 속 빈 내가 어울리는 밤이다. 밤이 자꾸 비어 간다.


속 빈 것들 / 공광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

가수 김태곤이 힐링 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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