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92

아침에,

by 강물처럼

비가 내린 후에 대기는 한층 더 차가워졌습니다. 구름 모양과 색깔이 다른 때와 달랐습니다.


가던 길을 서두르다가 어디로 가던 중이었던가 생각했습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었습니다. 이대로 얼마 더 가서 가을도 끝나고 거기에서 겨울로 접어들 줄 알았는데 도중에 길이 끊긴 기분이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밤이 오고 겨울이 오면 어떡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은 가을이 걱정입니다.


점점 줄어들던 가을이 하루아침에 홀쭉해졌습니다. 머리숱은 헤성헤성하고 윤기를 잃어갑니다. 갑자기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저 말이 온몸으로 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만 같아서 몸서리쳐집니다. 마지막 잎새는 그렇게 낭만적인 말이 아닙니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날이 갈수록´ 거기 가을이 가고 세월이 가면서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네 번, 머물 수 없는 시절이 다시 네 번, 사람을 울립니다.


눈이 오기 전에 네 번은 더 가을을 찾아볼까 합니다.


손톱도 발톱도 겨울을 날 생각에 기름기를 챙기느라 입이 바쁜 가을이라는데 내가 챙길 것은 암만 생각해도 추억밖에 없습니다.


가을이 또 가고 있습니다.


봄도 여름도 보낼 것 투성이었던 한 해가 비로소 여기 와서 쓸쓸할 줄 아는 까닭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을 때 하얗게 앉은 세월의 더께가 나와 가을 사이에 촘촘히 반짝입니다. 사금파리처럼 찔릴 것도 같은 것이 몽글몽글하니 사람 마음을 두루뭉술하게 띄웁니다. 글쎄, 산이며 나무들이 더 안 됐다 싶은 것이 아무래도 내가 사람이 다 된 듯도 싶어 넉넉한 표정을 짐짓 지어도 봅니다.



밥이 다 될 때 맡아지는 밥 냄새는 그랬습니다. 반가움 속에 허기, 허기 속에 근원적인 그리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짧은 미시 微時의 순간에 코밑을 훑고 지나는 그것은 잊히지 않을 사람 냄새입니다. 어떤 향수나 화장품보다 더 깊이 사람 마음을 베어낸 그 감각이 영영 그리울 것입니다. 11월에 비가 내리면 그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헤엄치거나 발버둥 치는 일은 고사 固辭 하며 이 빗속에서 죽어가는 것들을 생생하게 담아 두고자 합니다. 기억처럼, 추억이 되라고 위로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곳에 저절로 발길이 닿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억새라도 꽃처럼 반가운 것을 감추지 못하고 나도 하얗게 밥이 되는 시간, 늦가을 만추 晩秋.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 2:21



성전을 거니는 기쁨이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떠나는 환희가 여기에서 거기로.


대신 감기는 들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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