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 잊었겠지만 그리고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생각나실 겁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옥상에 TV 안테나가 있었습니다.
TV 화면이 좋지 않으면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면서 전파를 잡는다고 했습니다.
알고 쓴 말은 아닌데 그때 장애 障碍라는 말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방송 중에 여러 차례 장애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복구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모처럼 일본어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차´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후딱 메모를 해뒀습니다. 잘 잊어버리는 것이 요즘의 제 버릇이라서 놓치고 말까봐 서둘렀습니다.
누군가 질문을 했습니다.
장애와 장해는 어떻게 다르냐고?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아서 혀끝에서 말이 맴돌 뿐 나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어에서는 ´쇼가이´, 두 말이 모두 같은 발음이었습니다. 정말 생각 없이 쓰면서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단어를 알려줄 때, 그 부분에 신경을 씁니다.
서로 차이가 나는 부분과 공통된 부분, 특히 공통된 부분은 - 물론 설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 논리적이기보다는 해학적이거나 교훈, 아니면 옛날 전래 동화 같은 요소들을 빌리거나 일상에서 그 예를 찾아 꼭 한두 개의 문장만 전달합니다.
말은 생각으로 커지는 물 풍선 같은 것이라서 일일이 숫자처럼 가르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네 생각과 네 느낌을 거기에 보태어 싹을 키우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배워라.
그것이 제가 신뢰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해되는 폭 그대로 문장을 써보게 합니다.
예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짧은 글짓기´ 같은 항목이 있었습니다.
문장을 만들 줄 알면 그 말은 오롯이 아이의 것이 됩니다.
잘 써먹어라, 말은 잘 써먹는 데 그 맛이 있는 거니까, 부디 좋은 데 잘 써라.
그것이 말하지 않고 전하는 내 당부가 됩니다.
몸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서 불편한 것도 장애입니다.
말하자면 저같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시각이나 지체 장애를 갖고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계단 옆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오르막길이 만들어진 사회를 보고 있으면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발전이 감동을 잊지 않을 때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
여기까지는 장애의 영역인데 여기부터는 장애와 장해 障害가 서로 경합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의사소통의 장애를 겪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장애라고 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막아서 방해하는 것을 장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정의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내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면 그것은 나에게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묘하게 구분해서 잘 사용하는 편입니다.
절벽을 오르는 데에 큰 장해는 없었다. 별다른 장해를 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장애물과 장해물 둘 다 같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서로 닮은 공통점이 있지만 장애라는 말 혼자서 감당하는 부분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 가며 두 말을 구분하여 쓰는 것이 머리보다는 몸으로 먼저 깨우쳤겠구나 싶습니다.
둘 다 방해가 되는 것은 맞는데 어쩐지 장애가 되더라도 장해는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루카 19:22
감기 기운이 도는 듯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할 때, 차라리 막연했으면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이 앞장서서 달려 나갈 때, 속수무책입니다.
그것은 장애인가, 장해인가 싶은 순간이 우리 삶에는 자주 찾아오는 듯합니다.
감기도 들지 않는 그것들에게 좀 쉬어가라고 일러주면 좋을 텐데 혹시 무슨 좋은 수라도 알고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