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00

아침에,

by 강물처럼


오늘은 미리 기분이 좋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영어 교과서를 살피다가 반가운 것이 있었습니다.


곧장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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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야기가 거의 다 됐습니다. 저 위에 그어 놓은 직선을 손대지 않고 더 짧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골똘해졌습니다. 과연 손도 대지 않고 어떻게 저것을 짧게 만들 수 있을까, 지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누구 아시겠는지요.


늘 그렇듯 답은 조금 늦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동안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삶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정답을 요구하지도 그런 것을 아예 만들어놓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뛰어놀 만큼 실컷 뛰어놀게 허락해 준 시간이며 대지 위에서 우리는 지내고 있습니다. 가지고 놀았던 것들은 집에 돌아갈 때 제자리에 놓아두기로 했던 그 약속만 지키면 됩니다.


놀면서도 저 직선은 간간이 떠올려야 합니다.

숙제가 하나도 없는 인생은 심심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오늘 숙제는 저 선 線입니다.


고창에 가면 선운사가 있습니다.

송창식의 그윽한 노래에 나오는 그 절입니다.

선운사에 가시면 무엇에 눈길이 가고 발길이 따르던가요. 거기에는 녹차밭도 있고 동백 숲이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보기 좋게 펼쳐져 있습니다. 고창은 서정주 시인, 그분 덕분에 만세루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운사에 가시거든 만세루에 앉아보셨으면 합니다. 이철수 화가도 그 만세루가, 낡고 오랜 옷가지를 꿰매 입는 누더기 닮은 그 만세루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 그랬습니다.


무엇인가가 무엇인가를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 홀로 있는 것들에는 ‘비교급’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비교에서의 기본 전제는 ‘둘’입니다. ‘셋 이상’ 모이면 우리는 이런 말이 필요합니다. ‘가장, 그중에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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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대지 않고 처음 그었던 선이 짧아졌습니다. 그 옆에 그보다 긴 선을 그었을 뿐입니다.

이미 알고 있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재미로 한번 맞혀보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성’이란 개념을 이처럼 쉽게 그리고 절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드물 것 같습니다.


나의 괴로움이 너의 괴로움으로 희석되는 경험이 있으신지요.

그러면 안 되는데, 저는 그런 적이 많습니다.


미안합니다. 또 암 환자들의 병실로 잠시 안내하겠습니다.

환자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면 암묵적인 동의가 하나 생겨납니다. 무슨 암이며 몇 기인지 알고 싶어 집니다. 때로는 애써 그 말을 참고 기다리기도 합니다. 상대의 것을 알려면 내 것도 일러줘야 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 저 위에 그렸던 선이 그어집니다. 더 짧고 더 긴 선들이 착착 그려집니다. 마치 유리창을 긋고 내리는 빗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따로 더 좋았던 까닭은 그거였습니다.

아하,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그런 반가움이 아니라, 잠언에 나오는 문장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더 아픈 것이 덜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거였구나.

새벽 4시는 새벽 6시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더 어두운 것이 더 잘 볼 수 있게, 그랬구나.


나보다 못한 이들을 내 위안으로 삼았던 것이 어제는 더 짧고 긴한 이들의 수고로움으로 보였습니다. 깊은 어둠이 다른 슬픔들을 보듬어 잠을 재우는 밤이 떠올랐습니다. 그랬었는데, 그랬었구나... 싶었습니다.


오늘도 말이 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시며 말씀하시는 일이 많지 않은데 그 때문이라며 뒤로 살짝 숨겠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 19:42


평화를 구하는 저마다의 방법을 제게 일러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그것을 모아서 한 벌의 누더기를 만들어 입을까 합니다.

그 옷을 입고 멀리 다녀올 수 있다면 감개무량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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