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01

아침에,

by 강물처럼

이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이사는 얼마가 걸릴지, 날짜를 세는 것은 다른 때보다 즐겁기 때문입니다.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11월의 이사를 완성시키고 싶습니다.


지금은 이사 중입니다.



이사 移徙, 사는 곳을 옮기는 일입니다. 그것도 결국은 걸음입니다. 얼마간 걸어가는 일입니다.


그림 그리던 사람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닮은 듯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두 사람의 삶을 나란히 펼쳐놓고 바라보다 생각 하나가 찾아들었습니다.


닮은 것은 사람이고 다른 것은 생 生이구나. 그래서 인생이라고 하는 거구나.


´두 사람´의 ´화가´, 바로 그 말이 똑똑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인간으로서 중섭과 고흐는 애절하고 가난했으며 요절했습니다.


화가로서의 그 둘은 간절했고 힘찼으며 전설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쟁이 터진 극동의 작은 나라, 부산에서 그림을 그렸고 다른 한 사람은 아를의 너른 들판에서 캔버스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런데 둘이 닮았습니다.


인생을 살았다면 누구나 그게 어느 시대의 사람이었든 나와 닮은 것이 있었겠다.


거꾸로 나는 세상을 살았던 이들과 똑같은 어떤 것을 살아내고 있구나 싶습니다.


이중섭은 아내 마사코에게,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가장 외로운 지점에서 그들은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에는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便紙라는 말이 왜 내게 각인되어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쓰는 것보다 닿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거기에 가닿는 일이 지금처럼 쉬워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들은 쓴다고 다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중섭의 편지는 이런 색채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과연 난리통을 살아가는 사람인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나의 귀여운, 나의 기쁨의 샘, 가장 아름다운 아내, 소중한 소중한 나의 남덕 군."



그래서 지금은 편지를 쓰지 않나 봅니다. 이메일도 한때였습니다. 편지 대신 고지서와 광고들로 꽉 찬 메일함은 휴지통에 비우는 일도 성가셔서 내버려 둡니다. 벌써 오래됐습니다.



발작의 고통으로 어찌할 줄 모르던 고흐, 가슴에 총을 겨누고 생을 마감한 그를 생각하면서 그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힘들게 살았을 고흐의 영혼을 위해서 미사라도 봉헌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가 어떤 그림들을 남겼는지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내 삶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받쳐줄까 합니다. 그가 내 어깨에 기대어 오는 상상을 합니다.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난 고흐는 그보다 더 많은 이사를 했습니다. 서른여덟 번을 이사하면서 그가 찾아다녔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때마다 삶은 어떤 식으로 그를 업고 흘렀을까. 차라리 곰곰해서 찬찬한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것들도 적어봅니다.



살던 장소를 바꾸는 것만 이사가 아닙니다. 하지 않던 일, 이사 異事를 시작해서 전과 다른 사람, 이사 異士가 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벽초 홍명희는 조선의 3대 천재라고 불렸습니다. 그가 쓴 ´임꺽정´을 이제야 펼쳤습니다. 드라마로 봤고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헛배가 불렀던 탓에 그것까지 볼 ´시간´이 없다며 지나치던 것을 마음먹고 펼쳤습니다.


10권짜리 책을 다 읽는 동안, 그것을 '이사'라고 부르고 싶어 졌습니다.


이사 가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는 천재가 맞는 듯싶습니다.


천재를 만나 그의 재담에 반하는 일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내가 나인 것을 잊게 합니다. 잠시 황홀해지는 지금이 가을 속의 가을인 듯하여 남몰래 웃고 있습니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루카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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