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98

아침에,

by 강물처럼


오늘은 작지만 기념이 되는 날입니다.

한두 번은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그때는 이렇게 흘러올 줄 몰랐으니까요.


저도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 제 이야기는 곧장 가지 않습니다.


어딘가를 돌아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들렀다가 그제야 생각난 듯 일어섭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스타일이라고도 부르고 팔자라고도 합니다.


저는 또 고집스럽게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문체 文體´


삶의 방식이 글 쓰는 모습과 같다는 생각, 같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궁극에 가서는 문장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까지 일치하기를 꿈꾸다가 멈추고자 할 것입니다.


한참 그 연습 중에 있으며 연습이 실전이 되는 날, 그때 자유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궁금하신지요, 아니면 답답하신지요.


여기 와서 돌이켜 보면 이런 저를 답답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박자에 맞추려다 발을 헛디디고 말이 맴돌고 마음은 주저하며 웅얼웅얼거리다가 말았습니다.


상대가 나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 앞에 서 있기란 꽤나 우중충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버릇을 고치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째서 내 관심은 여기가 아니라 외딴곳에 가 있는지, 한 번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 것 같습니다.


매일 쓰는 이 편지가 그 대답인 듯싶습니다.


할 말이 하나도 없으면서 또 이렇게 길게 적어나가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이것을 다 듣고 앉아있겠습니까.


그만 떠들어야 하는데 어디에서 이 수다는 그칠까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그 순간은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다니는 송학동 성당 교우들과 묵상을 나눈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시끄러운 성격은 아닌데 아침마다 울리는 그 소리의 당사자입니다.


미안한 것은 미안하고 죄송한 것은 죄송하고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전합니다.



5년 전에 젊은 아이 아빠한테 적어 보내던 메시지가 젊은 아이 엄마에게로,


그리고 다른 암 환자들, 나하고 밥을 같이 먹고 산책을 다니던 그분들 몇몇에게 보여주던 펜시 용품 같은 아기자기한 메모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는 날짜도 적지 않았고 매일도 아니었으며 형식도 따로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그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통증보다 무서운 것이 있을까 싶었던 얼굴들이 기억납니다.


그 와중에 손을 뻗어 인사를 하고 ´오늘은 좋아 보인다. ´는 그 인사를 하고 그 옆에서 글을 썼습니다.


무슨 글을 쓰느냐고 궁금해하면 ´좋은 글´이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아, 이렇게 쓰다 보니 다시 그 글들을 꺼내보고 싶어 집니다.


우리끼리 나눠보고 싶었던 우리들 이야기를 그대로 묻어뒀습니다.


경환이부터 세상을 떠난 이름들이 속속 눈앞에 박힙니다. 선물처럼 주고 싶었는데...



다시 성경에 나오는 복음을 적고 묵상을 이어나갔던 날은 2018년 3월 8일입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때부터 기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오늘까지 4,437개의 짧고 길고 재미없고 재미있으며 내 안과 밖의 이야기들을 적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쓸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백 개가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성취감도 있었고 대견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오묘합니다. 4천 개 넘는 글을 쓰고 보니 진작에 그러고 살지 싶은 것입니다. 후회는 아니고 반성도 아니고 설렘을 동반한 아쉬움에 가깝습니다. 그러면서 더 써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 과정이 자연스러워서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나는 이렇게 순한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송학동 신자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된 데에는 전임 유종환 마태오 신부님의 덕이 큽니다.


그것이 재작년 11월 16일이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정말 빠르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동안 소식을 보내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모처럼 보낼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 딴에는 3년쯤 아침 묵상을 받아보셨던 분들이 더 좋은 시간을 갖길 바랐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글이 많고 더 좋은 생각과 경험도 많습니다. 그동안 지나온 것을 디딤돌 삼아 스스로 좋은 것들을 찾아 나서길 바랐습니다.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아침 묵상은 더 이상 보내지 않았지만 잘 지내시는지 늘 생각은 났습니다.


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늦가을을 실컷 즐기고 있습니다.


거기 잘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 일도 다시 적어 놓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 19:10



건강하시고 즐겁기를 희망합니다.


끝에 가서 웃는 것보다 평소에 자주 웃는 것이 삶에는 더 이롭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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