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복음 전반에 흐르는 정신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무엇인지요.
정신이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드니까 마음에 드는 말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어떤 말, 어떤 단어가 그대에게 머물던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 세 단어들입니다.
´마땅히´, ´진실로´, ´저절로´
공교롭게도 모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사들입니다.
부사 副詞라고 불리는 말들은 순전히 자기 의지하고 상관없이 나부끼고 흔들리는 존재들입니다.
지워지기로 하면 가장 먼저 지워지고 사라질 줄 아는 무방한 것들입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허무를 가르치고 건네는 늦가을에도 부사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부사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곰살맞고 황홀하기가 그지없는 말이 없고 그것처럼 쓸쓸하고 따끔거리며 까끄럽다가 한정 없이 아니면 까닭 없이 눈물짓게 하는 말도 없으면서, 부사는 빈 배처럼 고요해집니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날과 칠흑같이 어두운 날, 부사는 그 두 하늘에서 활갯짓을 하고 춤을 춥니다.
존재 자체가 무방하다는 것은 세상살이와는 차원이 다른 살림입니다.
꽃 하나가 피어도 어떤 것에는 방해가 되기 마련인 것을 부사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33
진실로, 저절로, 마땅히 사라지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실로 내가 따랐던 것으로 나는 속아본 적이 없습니다.
저절로 내가 되었던 것으로 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내가 해야 될 것으로 나는 사람이 됩니다.
속고 의심하며 살아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더라도 나를 보이지 않게 받쳐주는 저 부사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들입니까.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다. 非我也 비아야 勢也 세야.
내가 아니라 내 눈이 그렇다. 非我也 비야야 眸也 모야.
그럴 때마다 저를 깨우는 소리가 있습니다.
Mea culpa, 제 탓이요, 제 큰 탓입니다.
어쩌다가 부사를 적었습니다.
사실은 11월 닮은 시를 적고 싶었습니다.
금방 앉았다 일어서면 잊어버리고 마는 탓에, 제 큰 탓에, 적어놓고 가야겠습니다.
박목월 님의 그 좋은, 따뜻한 시입니다.
지상 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 玄關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 詩人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 六文三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 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地上,
연민 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 屈辱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 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 存在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이 시의 제목은 ´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