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08

아침에,

by 강물처럼

토요일은 깨지 않고 더 자려고 합니다.


그래도 해오던 것이 있어서 정신이 먼저 듭니다.


다른 날에는 몸을 먼저 일으키고 정신을 차리는 편입니다.


어느 쪽이 더 유혹적일까요.


정신이 들고 몸을 일으키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정신도 없는데 몸을 먼저 반응시키려면 습득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아이가 그럽니다.


"아빠, 내 손이 기억하고 있어!"


내 몸이 기억하는 것들 앞에서 사람은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꼭 끌어다 쓰는 소재가 하나 있습니다.


´천 년의 끌림´ 같은 운명이나 인연, 그것을 느끼고 마는 ´순간´이 거기에는 있습니다.


정신을 차렸는데도, 아니면 정신을 차렸기 때문에 몸이 움직이기 싫어집니다.


귀찮고 더군다나 지금부터는 날씨도 추워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속삭입니다.


우리 몸에도 세상의 그 어떤 회로보다 복잡한 회로들이 얽혀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고의 신속함과 세밀한 시스템을 가동시켜 일상을 회복하려는 기능들이 얼마든지 촘촘하게 깔려있습니다.


말하자면 몸이 하는 일들도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몸에는 정신이 누리지 못하는 단순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고양되고 제련되어서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투명하고 맑은 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 몸과 마음이 함께 나아가는 방법은 이인삼각 二人三脚.


그것이 맞습니다.



한참 말을 달리다가 멈춰 서서 ´내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일러주는 인디언의 속삭임을 떠올립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무엇인가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을 옆에 두고 움직이면 힘이 됩니다.


아는데 잘 안 되는 것은 몸이 말을 듣지 않거나, 정신이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신은 위기에 약합니다. 정신은 위기를 보면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속수무책으로 위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헌신을 다합니다. 헌신 獻身이라는 말도 뒤따라 왔습니다.


정신이 사용하는 방법은 역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여서 제 뜻을 실현합니다.


그러니 어지간히 머리가 좋은 상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 정신을 상대로 싸움을 겨루는 것보다는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무래도 현명할 듯합니다.


현명함은 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위기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편안한 것과 물러지는 것은 백지 한 장의 차이입니다.


나 我와 네가 他 다른 것도 그 차이에서 유지되는 현상일 뿐입니다. 삶과 죽음이 등을 맞댄 친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맞고 그른 것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거기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시비 是非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물러지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편안함을 즐겨야 합니다. 생 生이란 것은 그것을 맛보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편안함이냐가 그다음에 찾아오는 물음입니다.


그것은 선택하여야 합니다. 꼬마 아이가 그럽니다.


´그래서 선택은 냉정한 거야. ´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루카 21:35



이 말은 모순되고 역설적이며 이율배반적입니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올 것은 다 왔는데도 아직 다 온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내일이면 허기가 지는 것이 삶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은 진리가 됩니다.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6



저 문장 하나는 가볍지 않습니다.


나를 개미라고 여기고 사물을 판단하는 일은 가끔 도움이 됩니다.


개미 하나에 빵 부스러기 하나는 엄청 큰일입니다.


나에게 ´늘´이란 말은 언제나 커다란 숙제가 됩니다.


개미보다 더 작은 점이 되어 선 線을 바라보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선을 따라가는 일이 먼저 先, 그리고 착하게 善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소망 같은 기도, 기도 같은 소망이 됩니다. 이인삼각이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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