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영화의,

by 강물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란다.

많이 들었던 말이고 나도 격하게 공감한다.

더군다나 어떻게 보면 나와 같은 사람의 기를 살려주는 말 아닌가.

많이 아는 것 별로 소용없더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를 쓴 존 홀트 John Holt는 말한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

그것이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다고.


코로나 2차 대유행을 걱정하는 방역 본부장의 표정과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우리 모두 여기를 무사히 지나가자는 호소를 아이들과 함께 방송으로 지켜봤다.

조용히 다른 사람들 다니지 않는 산속에라도 다녀올까 싶었던 마음을 다소곳이 접어뒀다.

그 사이에도 지역 감염자와 확진자 동선이 휴대폰에 계속 울리면서 공개되었다.

조심한다고 해서 걸리지 않을까.

정말 괜찮을 수 있을까.

철부지 아이들 둘은 거실에서 헝겊으로 공을 만들어 던지고 받으면서 또 하나의 놀이를 만들어 냈다.

나한테 함께 야구를 하자고 추파를 던진다.

한가로운 것과 심심한 것을 아이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다룰까 싶어서 기꺼이 엉덩이를 일으켜 투수가 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오후가 지나고 밤이 되었다.

밤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집에 있는 우리는 여기에서 어디로 돌아가면 좋을까.

영화가 집이다.

하루 종일 거실에서 지낸 우리는 주변이 어두워진 시간에 영화를 열고 다시 집으로 들어선다.

편안한 분위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절반은 의도적이게 나머지 절반은 우연처럼 요즘 우리는 일본 영화를 보면서 지낸다.

아마 한동안 일본 영화를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로 손쉽게 고를 수 있으면서 나름 스토리나 구성이 보기에 편해서 좋다.

내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작은 엄마가 일본 사람이어서 일본의 정서라는지 문화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점도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가득 찬 사회에서 균형 잡힌 안목이나 식견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 걱정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 나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들여다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마련해주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마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듯이 그다지 폭이 깊지 않은 나에게도 일본 영화 러브스토리에 나왔던 토요카와 에츠시는 이상하게 믿음이 간다.

그가 아빠로 나오는 가족 영화다.

과격파 아나키스트라고 소개되는 아빠는 여태까지 세상에 없던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의 아빠는 둘 중의 하나 아닐까.

자식들이 창피스러워하는 아빠, 아니면 자랑스러워하는 아빠.

나는 우리 아빠가 창피했던 아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거나 부탁하거나 윽박지를 마음이 전혀 없다.

주고받는 것이 대가라면 응당 그 대가를 치를 마음도 준비되어있다.

사실은 아빠를 창피하게 여겼던 시절이 나에게도 무척 괴로웠었다. 죄와 벌이 동시에 내 몸에 쏟아지던 햇볕 가득한 날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아나키스트가 뭐냐는 말에 '무정부 주의자'라고 설명해주면 그게 맞을까 싶어서 세상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바꿔 말해줬다.

물론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영화 한 편이 어떻게 무수한 담론을 다 담아낼 수 있으며 다상량 多商量해야 하는 그릇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

한 줄기 흐름 정도만 맛보게 해 주어도 다행스럽고 행복이다 여기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소심한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소리 없는 침묵에는 두려움이 먼저 드는 사람이다.

'정부'가 무엇인지 설명할 자신도 없다.

다만 우연처럼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간종거리며 잠시 뜸을 들여본다.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나는 '무정부'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지 알겠다.

예금통장 없는 햇빛이야말로 정당 正當이다.

남쪽에는 정당한 햇빛이 가득한 바다와 하늘이 산다.

그래도 내 말이 영 헛 것은 아닌 것이 영화 속 아빠는 줄곧 세상 사람들을 향해 '난센스'라고 일갈하며 깨우쳐준다.

자유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막아선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덤빈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심지어 한 때는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 자유로움마저도 새롭게 고쳐나간다.

누군가 한 사람은 꼭 너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이 나는 가장 부러웠다.


강이는 중간에 먼저 잠이 들었고 산이는 영화를 다 봤다.

끝이 이렇게 끝나는 거냐며 무엇인가 궁금증이 다 풀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상 理想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 말하려다가 시간이 늦어서 그만뒀다.

오키나와의 바다가 에메랄드 빛이라고 그러던데, 산이야 그 바다에 빠져 헤엄치면 바다는 무슨 색일까.

우리가 손에 쥐고 발로 밟고 매일 숨을 쉬는 현실과 하늘색 닮은 그 바다는 얼마쯤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일까.

영화에 나왔던 아빠가 아빠하고 닮았다며 웃어줘서 고마웠다.

나는....

나도 아나키스트였을까.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봤었는데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으면서 또 한 번도 제대로 그래 본 적도 없었구나.

20년 동안 하루도 너를 생각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던 영화 속 엄마의 엄마 대사처럼 말이지.

생각하면서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삶, 아마 영화에서 그리는 무정부 주의자는 그런 뜻이었을 거야.

만나지 못할 거면서 생각만 하면 무슨 소용이냐.

생각만 하고 살 거라면 차라리 간판을 내려라, 그것이 국가든 사회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산이와 강이하고 차분하게 토요일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코로나가 걱정되는 시점에 와서 분명하게 하나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너희와 항상 '지금'을 잘 살아왔다.

지금 느끼고 가졌던 즐거움과 행복감이 생생해서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

아빠는 고마운 것이 전부다.

앞으로도 - 앞으로라는 말은 오히려 마음 약한 말인 거 같으니까 앞으로라는 말 쓰지 않고 - 오늘처럼 같이 뛰놀고 먹고 웃으면서 아이처럼 그렇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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