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 나희덕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 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리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잊지 못하는 또는 잊지 않는 영화가 하나 있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일본 영화 '러브 레터'
그 영화의 어떤 대목이 특별해서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의 스타일이나 스토리가 내 취향에 맞아서 좋다거나, 무슨 천재적인 감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란 말도 식상하다.
나는 그 영화를 몇 번 봤다느니 일본어 대본을 직접 따라서 적어봤다는 것도, 거기 나오는 곳을 찾아서 오타루에 다녀왔다는 것도 모두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전히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
그 주인공들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끔 내 속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
그리고 하늘이라도 볼라치면 영화 속의 하늘이 펼쳐진다는 사실이.
행복이면서 슬픔이다.
삶이 그러한 거.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기를 나는 기도한다.
새가 날아간 하늘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을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길 바라면서 내다봤을 병실의 창窓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내 그 창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창 窓만큼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을까'
나도 거기에 그대로 따라 적어본다.
새가 날아가고 나뭇가지는 새가 남긴 진동으로 백 년을 흔들릴 테니까.
적어도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나는 나머지 세월을 흔들릴 것이다.
흔들릴 때마다 얼굴은 잊었어도 이름 세 글자만이라도 먼지 쌓이지 않게 읊어주리라.
그것이 사랑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