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약점
평소 같았으면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도 ´꽃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지내고 있었을 겁니다.
동백이 한창이란다.
남쪽 어디에는 매화가 피었고 홍매화도 나름 운치 있더라.
산수유도 피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봄이 왔다.
이런 말들이 둥둥 떠다녔던 지난 3월들을 떠올려봅니다.
우리가 누렸던 것들에 대해서 - 그 호흡과 걸음과 표정, 햇살, 웃음소리 같은 무공해 자연미들에 대해서 하지만 올해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그것들에 대해서 - 늦었지만, 많이 늦어서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고마웠었다고 고쳐 말해두고 싶습니다.
벚꽃도 필 것이고 어느 집 담장 아래에서는 목련 봉오리가 수줍어하며 솟을 것입니다.
몇 묶음이나 묶여서 프리지어가 단돈 2500원에 하나로 마트에 나와있기에 무조건 집어 들었습니다.
´꽃이 있어야겠다.´
지금은 꽃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단순하고 명확하게 들었습니다.
꽃이 싸서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누가 사갈까 후다닥 서두르기에는 너무 큰 바구니에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이 가득했고 그 꽃을 이렇게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어떤 얼굴들이 스쳤습니다.
엊그제 아침 기도 에세이에 썼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왔다.
'꽃이 있어야겠다.'
나는 이 문장에게 끌려버린 것이다.
매혹당하는 순간은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 궤변이라도 좋으니까 흠뻑 그 향기에 빠지고 싶다.
그거야말로 계절의 순환이고 '봄'이면서 '나이 듦'의 미학이 아닐까 한다.
나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 취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에 둘 있다.
하나는 길, 나머지 하나가 꽃이다.
수없이 많은 길이 있어도 매번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고, 온 세상이 꽃대궐이어도 마음에 드는 꽃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만큼이다.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누군가 한 번쯤 물어봐 주면 좋겠다.
'조오타!'
식탁에 놓인 프리지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노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밥알을 씹으면서 꽃향기도 함께 씹는다.
더 오래 씹고 서서히 삼킨다.
삶이 사랑스럽게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수술도 해버린 모양 사나운 뱃속이라지만 봄날 장강에 배를 띄우고 꽃놀이 나가는 것 못지않는 호사를 누린다.
나는 너희와 밥을 먹는 일을 복 福이라고 부른다.
따뜻한 기운마저 내가 먹은 것들과 꽃향을 맡으러 나와서 저도 더 따스해지는 아침.
아침이 밥상 위에서 연주되는 피날레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주지육림 酒池肉林이 눈곱만큼도 부럽지 않은 아침밥을 꼬맹이들과 함께 먹는다.
그 꽃말처럼 우리는 천진난만하게 피어 보기로 한다.
"아빠는 꽃이 좋아?"
밥 한 번 먹고 꽃향기 한 번 맡는 내가 어린애 같았던지 맞은편에 앉은 딸아이가 묻는다.
굳이 알고 있는 말에 대답을 할 필요가 있나.
그저 웃는다.
딸아이와 내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옆에 앉은 아들은 슬쩍 긴장이 되나 보다.
이 사람들이 또 어떤 이상한 집을 지으려고 하지?
대충 그런 느낌이 전해진다.
산이는 계단을 오르듯이 세상을 보고 문제도 풀어낸다.
하나씩 오르면서 폭을 좁히고 그러면서 계단 끝에 놓여있는 한 점을 분명히 응시하면서 나아간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문제를 맞힐 확률이 높다.
반면에 강이가 오르는 길은 계단이 아니라 '오솔길'이다.
그 오솔길은 길인 듯 길 아닌 듯한 것이 매력이면서 고달픔이기도 한다.
경계를 타고 오른다고 할까, 언제든지 다시 시작해야 될 수도 있고 어디서든지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길 끝에서 바라볼 풍경이 어떨 것인지 예상하지 못하는 길이다.
그래서 모험적이며 다채롭고 자연스럽다. 바람 부는 맛이 있다.
"그럼, 아빠. 꽃에도 약점이 있어?"
산이는 이런 질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거꾸로 강이도 오빠랑 이야기를 자주 나눠야 한다.
그러기만 해도 서로는 요철처럼 똑 맞아떨어지는 어떤 지혜를 갖게 될 것이다.
내가 몰랐던 것과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는 기쁨은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나는 나이가 쉰이 되었어도 그런 연결을 해본 적이 없다.
'꽃'에 '약점'을.
부모가 자식한테 지는 것처럼 평화로운 승부가 어디 있을까.
자연스러운 것이야말로 평화라고 믿는 나에게 평화의 순간이 밀물처럼 들어찬다.
참기름 바른 김을 밥 위에 싸서 그 평화의 꼭대기에 오른다.
아, 맛있다.
"글쎄, 약점이 있겠지. 약점 없는 것도 약점이니까. 뭐든지 약점 하나는 갖고 있을 거야."
"약점은 나쁜 거잖아? 근데 약점이 없는 것이 나쁜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답은 '글쎄'다.
그 말을 하고 나면 가슴이 편하다.
숨을 한 번 쉬고 난 것도 같고 '쎄'라는 말은 짧게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다른 것들이 한 박이라면 그것은 점 하나만큼을 더 늘려서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
듣는 사람보다도 말하는 사람이 편해지는 대답, 그리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말이다.
강이는 아직 11살밖에 되지 않아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 편과 우리 편 아닌 것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 '회색'을 어느 쪽에 둘 것인지 언제 기회 되면 물어봐야겠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세상이 온통 걱정 투성이다.
나중에 지금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코로나 19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알지?"
그거 위험하고 무섭고 사람까지 죽는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아이들 휴대폰으로도 지자체에서 보내주는 주의 메시지가 날아오는 실정이니까.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약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강이야?"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약점이 있어야 반대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겠지?"
어떤 것의 약점은 다른 것을 살리기도 하는 약 藥이 된다.
약점은 弱点, 그야말로 약한 곳이어서 사실은 꼭 약이 필요한 곳이다.
약을 발라놓아도 약점으로 남아 있는 곳.
그래서 늘 애정을 갖고 바라봐야 하는 곳.
약점 없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약점 때문에 우리가 더 건강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은 내 '약점'같은 것인가?
아이에게 더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빠 대답은 '글쎄'로 대신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것을 꺼내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꽃'에게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 아침밥도 영양가 만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