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23

아침에,

by 강물처럼

두 스님이 대화를 나눕니다.


먼저 젊은 스님이 묻습니다.


"스님, 번뇌는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요?"


노스님이 좌선하듯 가만 눈을 감습니다.


지긋한 말 한마디가 두 사람 사이에 방울졌습니다.


시간마저 고요했습니다.


"그래, 번뇌는 끊어서 뭐 하려는가?"



무엇하시렵니까.


하고자 하는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인지요.


어떤 때 ´기껏해야´라는 말을 꺼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먼 길을 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할 때만 꺼내보라며 건네주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다 잊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요.


누구는 옛날 사진을 꺼내 들고, 누구는 음악이며, 어떤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음식을 찾습니다.


기껏해야, 그것은 끝이 날카로운 칼입니다.


그 말이 가장 예리하게 번뜩일 때는 ´제까짓 게´를 요리할 때입니다.


칼이 춤을 춥니다. 낭자한 것들로 발아래가 어지럽습니다.


번뇌 또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껏해야를 잘 간직했던 사람이라면 끝이 달궈지지 않습니다.


그는 순종합니다. 스스로 순종하는 사람은 해가 뜨고 지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읍니다.


그렇게 세월을 쌓아가는 일이 기껏, 겨우, 한낱 한 생이 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 번뇌에 꼬리표를 달아줄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잘것없었다. 그럴 것 없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 루카 7:22



눈도 멀쩡하고 거기에 걷기도 하며, 나병은 아예 모르고 살고, 귀도 괜찮고 죽지도 않았으며 가난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기껏해야 그것이 복인 줄 아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백 리나 더 남았습니다. 날이 저물면 어떡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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