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26

아침에,

by 강물처럼

어느 미술 평론에서 들었던 적 있는데, ´성화 聖畵에 등장하는 요셉은 웃지 않는다. ´ 그러면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지금이라도 요셉과 같은 처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텐데 하물며 그 시대에, 요셉은 실컷 갈등하고 그러고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을 것이다는 해설이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잊었지만 저도 뭔가를 알기 시작했던 듯합니다. 요셉 성인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나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의 시련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영광과 찬미는 후세의 몫이지, 그 당시를 직접 관통하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정이 갔으며 내 세례명이 요셉인 것을 새롭게 받아들였던 계기가 됐습니다.


왜 고리타분한 이름일까, 하필 세련된 이름들도 많은데 그게 제 속마음이었습니다.


늦게 결혼해서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이름을 당연히 내가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름 짓는 데 솜씨가 있거나 뭐 좀 아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 말입니다.


가수 이승철이 오더라도 너보다 축하하는 마음이 크겠냐?


나는 네가 부르는 노래가 더 좋다. 그것이 홀가분하고 편하고 더 멋지다. 그런 마음 말입니다.


옛날에 친구에게 노래 부탁하면서 말했던 대사는 지금 생각해도 그럴듯했습니다.


못 짓는 이름이니까, 쉽게 지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을 담고 늘 그 이름을 부를 때 기도합니다.


´너는 산이야. ´


저희 어머니도 첫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에 세례를 시키면서 당신이 아는 가장 쉬운 이름, 그렇지만 가장 편안한 세례명을 선택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전 마리아, 마리아가 아는 첫 번째 이름은 아무래도 ´요셉´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세례명을 말할 때 마음이 좋았습니다.


좋게 마음먹고 나면 배울 것이 쏟아집니다. 요셉 성인에게는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힘은 이것입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 마태오 1:19



자기에게 해가 되는 일에도 마음을 잃지 않고 탓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만 검색해 봐도 온갖 범죄들이 득시글득시글 들끓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거머리 같고 생쥐들 같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나옵니다.


교복을 빨아주는 할머니를 죽이고 내연녀의 중학생 아들을 둘이 찾아가 죽이고 시끄럽다고 아파트 계단에서 또 죽이고, 돈을 빌렸다가 죽이고 술 마시고 운전해서 죽이고, 알고도 죽이고 실수로도 죽이는 또는 죽게 만드는 사람들이 거기 있습니다.



공자님이 그러셨습니다.


시고오부녕자 是故惡夫佞者, 내가 이래서 말 잘하는 것들을 싫어한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여 사람의 기분을 사는 일이 인기가 좋습니다. 얼굴도 예쁘게 이름도 멋지게, 명품 소비량이 월등히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가 됐습니다. 김밥도 천국, 성형도 천국인 곳이 여기입니다. 우리는 자꾸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만 잘하는 것인지 말도 잘하는 것인지 그마저도 따져볼 여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시절에 어울리는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으로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증상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몸과 마음을 쉬여야 할 토요일 아침에 풀 죽은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또 미안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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