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첫 주에 아빠는 모처럼 여행을 다녀왔다. 늦은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이른 일요일 오후에 돌아온 짧은 여행이었지만 1년을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또 산이나 강이, 엄마하고도 떨어져서 아빠 혼자 다녀온 여행이었지만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기분을 만끽했던 힐링의 시간이었다. 너희는 아직 추억이란 말이 얼마나 많은 맛을 우려낼 수 있는 보물 같은 것인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아빠가 쉰 살이 넘고 흰머리가 나는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사실은 그 맨 아래에 빛나는 것들이 자리를 잘 잡아주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오늘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나였던 때부터 하나씩 쌓이고 반짝거리면서 몽글몽글, 시간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멀어지며 들려줬던 세상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남긴 사금파리의 결정 結晶 아닌가 싶다. 아빠는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자전거 한 대에 넷이 타고 다녔던 가난하고 즐겁고 맹랑하고 높았던 날들이 촘촘히 깔린 바닷가를 앞에 두고서 까불고 웃다가 한 데 헝클어져서 잠을 잤다.
너희들도 잘 알잖아?
아빠가 가끔 신발 던지기 하자는 거. 이번에도 내소사를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 크고 넓적한 돌을 보고 그 생각을 해낸 거야. 아빠 친구들이 얼마나 너희처럼 웃던지 산이 강이도 봤으면 재미있었을 거다. 깔깔거리는 오십 넘은 아줌마 생각을 해봐라. 아빠는 정말 오랜만에 그 친구들이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업어줄 뻔했다. 우리 그리고 혼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고약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큰소리로 애들 혼내듯이 혼내던 것도 그렇고 깜짝 놀라서 후다닥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선 것도 또 우습다. 친구를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신비를 너희도 언젠가 경험하게 될 거야. 그런 맛이 있어야 사는 게 맥없을 때 마음이 총총해지거든.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 앞에 서면 사람도 돌돌해지고 싶은 것처럼 삶이 밀고 나가면서 툭 터지는 힘을 투명하게 느껴보는 날이 있다면 좋겠다. 동심 童心 가득하게 나이를 먹어간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이며 그때에도 너는 강산이고 너는 강이라면서 초콜릿을 동강내어 살살 녹여 먹고 싶다.
She may be the reason I survive. The why and wherefore I'am alive. The one I'll care for through the rough and ready years. 그녀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내가 사는 이유. 살면서 내가 돌봐야 할 사람.
나는 그 노래가 흐른다. 노팅힐에서 본 노팅힐, 그 노래 She.
그 노래를 너희에게 소개하려면 어떤 부분을 드러내고 어디를 감춰야할까. 디자인은 멋진 일이니까, Let me try it.
너희들도 잘 아는 격포 바닷가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어릴 적 친구들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그 노래를 다 같이 불렀다. 시절이 묻어나는 유희 遊戱는 하나의 관음 觀音이 된다. 그들, 한 생애를 살아온 동료나 벗에게서는 씻어지지 않는 내음이 묻어난다. 땀, 눈물, 기름기, 하물며 입으로 먹고 속으로 남기고 밖으로 내놓는 것들마저도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노랫말이 되어 계속 연주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보리심 가득한 관음의 미소처럼 해박하고 정겹고 먹먹하다.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인사한다. 건강하고, 잘 지내고.
산이가 친구들하고 소통이 잘 되는 편이라는 것은 4살 때에도 아빠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고맙고 뭉클한 광경이어서 너를 어린이집, 이슬반 교실에 들여보내 놓고도 한동안 거기 서서 너를 보는 것이 내 하루의 기초석이었으며 내 보람의 시금석이었다. 너는 4살이었으며 잘 달렸다. 웃음이 나는 웃음을 나는 기억한다. 네 웃음소리는 돛을 부풀리는 힘이 있었다. 밀어주는 힘이 있었다. 산이가 윤준이라는 친구하고 집에 와서 하룻밤을 보냈다. 상준이란 친구는 백신 주사를 맞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 머물기로 했다며 저녁 늦게 영화를 보고 들어온 너희는 표정도 좋았다. 그래, 술을 사주지 못해도 재밌게 놀아라,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수덕이 아버지한테서 막걸리를 얻어 마신 것을 지금도 자랑으로 여긴다. 너희는 나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니까, 그것은 내 추억으로만 간직하기로 한다.
Me I'll take her laughter. And her tears and make them all my souvenirs. For where she goes I've got to be. The meaning of my life is she, she, she. 그녀의 웃음과 눈물은 내 삶의 기념품. 그녀가 가는 곳이 나 가는 곳, 그녀는 그녀는 그녀는 내 삶의 의미.
누군가의 그, 그녀가 되는 He, She.
그 시절에 나는 찬송가를 지어 부르는 Hymnist.
강이는 어제 오후부터 얼굴을 못 봤다. 아빠는 수업을 하고 가까운 산에 다녀왔다. 눈이 내렸으며 길에서 시가 될 만한 말들을 주었다. 적요 寂寥라는 말은 쓸쓸하고 고요하다는 말이 짝을 이룬 말인데 소설에서는 그 말이 종종 등장하더라도 시에서는 대놓고 그렇게 쓰지 않는다. 그 느낌을 알아채라는 듯이 힌트만 주고 시인은 모른 채 지나간다. 서로 간에 느낌을 존중하는 기백이 시에는 있다. 그래도 괜찮다는 우월감 같은 것도 숨겨서 가져간다. 때로는 술병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든지, 포장을 새로 해서 비밀스럽게 또는 우아하게, 그렇지 않으면 소박하게. 길에서 눈을 맞았다. 차가워야 할 것이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강이는 어디에서 친구들하고 떠들고 있어도 여전히 강이였다. 그래, 저녁은 잘 먹었는지, 그리고 그 저녁 다음은 무슨 이야기로 너희는 꽃을 피웠는지, 파자마 파티라는 말은 강이하고 강이 친구, 수현이 재현이 민채 덕분으로 내게 그림이 될 듯하다. 내 소녀적, 달팽이 꿈이여, 어디에서 부르던 노래. 그 생각이 불현듯 솟는다. 그러고 보니 잊지 않고 잊었던 이름이, 문현숙이다. 그 아이도 쉰 살이 넘었고, 그럼 아이라고 부르지 말까. 노래를 잘했다는 말과 나하고는 다르게 촌스럽지 않았다는 말, 서울로 전학 간다는 말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늘 따라다녔다고, 그 세 마디를 전하고 싶은 소녀, 12살 아이.
She who always seems so happy in a crowd. Whose eyes can be so private and so proud. No one's allowed to see them when they cry. 늘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그녀, 눈빛은 속삭이고 당당하고. 그 눈에 눈물이 비치는 일은 아무도 볼 수 없지.
밖에 눈이 쌓였다. 길이 미끄러울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아파트 꼬마 아이들은 어젯밤에도 아무데서나 썰매를 타고 있었다. 눈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준다. 그래서 차를 주차하는 것도 길이 복잡해지는 것도 그리고 반갑고 쓸쓸한 감상 같은 것들도 그네를 태운다. 멈추면 한 번씩 밀어주면서 오늘을 보낼 것이다. 눈부신 날이다.
She may be the face I can't forget. A trace of pleasure or regret. May be my treasure or the price I have to pay.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얼굴. 기쁨과 후회의 자취, 내 나의 보물이며 삶의 감당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