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27

아침에,

by 강물처럼

흥미롭기도 하면서 무엇보다도 내가 이것밖에 되지 못했다는 것이 고소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무슨 외국어 공부라도 하는 줄 알 것입니다.


한 페이지를 읽다가도 휴대폰으로 사전도 찾지, 앞뒤로 다시 읽으면서 무슨 말인가 더듬어 보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마무리를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사한 보람이 있구나 싶습니다.


열 권짜리 책이 성가셨던 적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저거 그렇지 않아도 볼 만한 책이 얼마나 많은데 누구 줘도 안 읽을 거 같다며 구박 아닌 구박을 했습니다. 또 한 번 좋아하는 말을 적습니다. 모두 시절 인연인 듯합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임꺽정은 한자 이름이 없습니다. 굳이 한자로 쓰자면 林巨正이 됩니다.


아시는 분이야 싱겁다 하시겠지만 꺽정이란 이름은 그야말로 ´꺽정스럽다.´는 푸념이 이름이 된 꼴입니다.


천한 이름이며,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이 큰 이름이 된 것입니다. 巨正이라면 거대한 옳음 아니겠습니까.


소설 임꺽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한 꺽정이 어떻게 巨正이 되는지, 그것을 보여줍니다.


천한 것들을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그런 눈이 우리에게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좋은 것 속에 좋은 것은 기대를 충족시키지만 좋지 못한 것 속의 좋은 것은 기대를 넘어섭니다.


물론 좋은 것 속에 좋지 못한 것이 들고 좋지 못한 속에 더 좋지 못한 것이 트기도 합니다.


나는 어느 속에 들어앉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어섯눈´ 이란 말도 엊그제 새로 배웠습니다.


사전은 ´지능이 생겨 사물의 대강을 이해하게 된 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일러줍니다.


말하자면 동틀 녘 같이 희미하게 떠지기 시작한 개안 開眼이 어섯눈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말을 써먹게 되어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기로 합니다. 말 그대로 어섯눈이 떠졌습니다.


그것은 자생 自生의 꼬투리 같은 일입니다. 눈이 떠지고 주위를 알아보고 걸음을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



임꺽정을 읽으면서 메모를 했습니다. 이 소설을 예수님과 그 제자들로 옮겨 적기를 하더라도 얼마든지 각색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해의 부분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해는 전면적이지 못하고 조각과 조각을 이어 붙이는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설명과 설득, 오해와 이해를 자주 건너 다녀야 합니다. 그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통찰이나 숙고, 애민 愛民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인문학이란 말을 좋아하고 곁에 두고자 하는 뜻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애 愛인 듯싶습니다.


성서는 그 인문학의 토대, 받침돌입니다. 그 위에 쌓아 올려진 수많은 책들과 업적들, 거기 맨 위에는 ´나´라는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 있고 그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 순서도 아니고 이름의 크기로 쌓아 올린 탑이 아닙니다.


공시적이며 동시에 통시적인 시간이 거기 머물고 있으며 유한하며 무한한 내가 자리 잡고 중심이 되는 한순간일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그와 같다는 것이 얼마나 드라마 같은지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루카 1:38



거기 서서 잘 바라보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을 알아보는 어섯눈이 뜨일 것입니다.


그때, 무슨 말이 생겨날지요.


처음에도 말씀이 있었고 나중에도 말씀이 머물 것입니다.


12월은 끝이며 거기에서 나와 다른 내가 일어서고 걷고 말하기를 잉태하는 달입니다.


세상이 나를 위해 태교 하는 달입니다.


우리는 건강하게 태어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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