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30분 보건소 앞길은 벌써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경기장으로 가자. 거기는 10시부터니까 우리가 빠를 거라는 예상은 그대로 깨졌습니다. 그런 순진한 생각으로 세상을 살다니, 빼곡한 차들이 저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어, 이제 왔나 보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그 근처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들도 거기에 중학교에서까지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며 메시지가 정신없이 배달되었습니다. 동거인들도 검사, 서둘러 줄 서있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먹고사는 일이 바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후회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생각이 쓸쓸한 웃음이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할까, 무엇을 탓하고 있을까. 옆에 앉아 있던 산, 이 엄마는 연신 ´줄 봐, 어머나, 저 줄 좀 봐. ´ 그 소리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최선일 텐데, 여기에서 더 혼란스러워지면 이렇게라도 질서가 지켜질까. 나는 또 혼자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인지 그게 또 궁금했습니다.
마스크를 철석같이 믿는 것인지, 백신인지, 아니면 운 같은 것인지.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17살짜리에게 내가 오십 살쯤 됐으니까 이런 말 해줄 수 있을 거 같다며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나는 그 방법을 몰랐었거든, 후회할 줄은 알았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직행할 줄만 알았으니까.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아는데, 그것도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거지, 네가 고집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재료를 준비해 놓듯이 말의 앞자리를 먼저 훔쳐놓습니다. 몰래 가져간다는 말이 아니라, 행주로 물기를 말끔하게 닦아낸다는 뜻입니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나와 신경전을 벌이는 남자아이여서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물일곱은 좀 이르고 서른일곱, 그쯤도 좋겠지만 조금 더 가보자고 하면 실감이 나지 않겠구나. 그래, 서른일곱쯤에서 열일곱을 바라보는 거야. 어떻게 보일까. 잘 보일까, 그렇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 네가 너를 보는 것보다는 선명할 거다. 상상해 봐라. 상상!
상상할 줄 하는 것은 머리가 있다는 거야. 머리가 있으면 지혜로워야지, 그렇지?
도중을 지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불안한 일이며 또 힘든 일인지 좀 알아주면 어떨까.
누가 너를 먼저 좀 알아봐 주면 훨씬 편할 때가 있지? 그거야. 지금 너를 알아줄 사람은 먼 훗날의 너야. 그래서 사람은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그러는 것이다. 너 혼자 여기까지 온 것 같아도 과연 그게 그럴까. 그럴까?
뜻밖이었을 것이다.
아이도 나도, 둘이는 서로에게 뜻밖이었다.
순전히 내가 책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그 말 때문이었다.
´토요일에만 두 번 눈물이 났고, 일요일에는 안 울었어요. ´
울 줄 알다니, 그깟 일로.
애들 앞에서 잘난 체를 곧잘 하는 편입니다.
저는 또 루쉰의 짧고 쉬운 시를 하나 적어줍니다.
희망이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은 많은 길을 걸어볼수록 그리고 먼 훗날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일수록 담대해져서 진짜가 된다.
너는 희망을 걷고 싶지 않냐. 이왕이면 그쪽으로 가보고 싶지 않냐.
아이에게 말한다는 것이 어느새 나는 옛날의 나를 훈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거기에서 지금 어떻게 지내는데?
이건 몰랐지, 내가 너한테 먼저 말을 걸어올지는.
나는 열여덟, 스물둘, 스물아홉, 서른, 서른다섯, 일곱, 마흔, 마흔여섯, 계속해서 스토리를 짜내는 거미 같았습니다.
실을 뽑는구나. 그 거미줄에 무엇을 담으려고 너는 실을 뽑느냐.
그렇게 아침부터 둘이서 차 안에 갇혀서(?) 신세 한탄을 하다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동거인´은 코로나 검사 대상이 아닙니다.
아직도 줄은 한참 남았는데, 이것도 어디냐 싶어서 얼른 줄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풍경이 시원했습니다. 일단 기분이 좋은 것이 뭔가 어린애들 장난 같았습니다. 돌아가면 또 코로나인데, 그래도 가야지 싶었습니다.
17살, 무슨 말을 해도 그 천연색에는 감당이 안 됩니다.
네가 짱이다, 너만 모르는 네 색깔이, 겨울에도 파릇파릇하니 너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국어 선생님이 꿈이랍니다. 다행이다, 연애를 할 줄 알아서. 그렇게 말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