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서만의 매력이라면 바로 첫 구절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아우라입니다.
사도 요한의 성심 聖心과 인간미가 복음서 문장마다 숨 쉬는 신비가 있습니다. 사람이 쓴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사람이 쓰지 않은 문장입니다. 요한복음서에는 호흡이 묻어납니다. 거칠었다가 평온해지는 우리의 그것과 같은 생명의 시그널이 전면에 흐릅니다. 하지만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그는 보았습니다. 그가 본 것을 그리고 그의 손으로 만졌으며 오롯이 그의 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존재를 내가 체험하는 신비가 요한복음서에는 시냇물처럼 흐릅니다. 복을 기원하는 사람이 두 손 모아 비는 것처럼 요한복음서의 기쁨을 가지십시오. 거기에는 바람이 흐릅니다. 이것에 저것을 물어다 주는 그 바람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원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선사합니다. 복음의 기쁨이 거기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두고두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내내 봄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 요한 1:1
내가 믿는 종교는 이 문장이 전부입니다.
이 문장은 불완전하며 완전합니다. 틀렸으며 맞습니다. 모르는 길이며 믿는 길입니다.
시작의 시작, 이전의 이전, 잉태 전의 잉태. 죽음의 죽음을 부르는 문장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고 아무것도 없어야 처음이 비로소 존재합니다.
말씀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왜 그리고 무엇이라는 질문보다도 먼저 존재합니다.
존재라는 의미가 따라붙지 못하는 속도이며 속도라는 개념이 해석하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전부여서 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리도 다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장비를 장착하더라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 Genesis 1:1
태초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 창세기 1:1
처음에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입니다.
거기에 시작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종교입니다. 사람의 바람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수수께끼를 풀러 이곳에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훔친 카메라였고 그 카메라로 찍은 하늘과 구름과 일상이 종교라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며 느꼈던 것일까요. 그것은 혹시 종교가 꾸는 꿈 아니었을까요. 종교든지 자연이든지 말씀 같은 존재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맨 나중에 할 말은 ´덧없다. ´ 같은 색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쓸쓸한 것도 아니며 환한 것은 더욱 아니며 슬픈 빛깔도 아닌 바람의 색 色, 그것일 것입니다.
사람이 할 말은 그런 것이었으면 합니다.
부디,
그것을 손 모아 말로 표현하면, 아멘 같은 말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