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산이 코로나 검사 1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부터 휴대폰에 긴급 문자가 날아들었다.

강이가 다니는 가온 초등학교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고 산이네 학교에서도 그랬다. 그러면서 동거인들도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다. 강이는 행정 명령이란 말이 무서웠는지 떠들어댔다. 이거 행정명령이래, 명령.

우선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정해 준 시간대에 학교로 검사받으러 가면 된다.

애들 엄마하고 나는 종합 경기장에 있는 검사소에 가기로 정했다. 일요일 저녁이 어수선하게 지났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검사를 받았다.

동거인들은 도중에 검사에서 제외됐다. 그렇더라도 아침부터 검사받으려고 서둘렀고 다른 일정은 취소된 상태였다.

검사를 받고 온 강이하고 산이에게는 하나의 경험이 새로 생겼다. 눈물이 나오더라고 한껏 과장되게 저희들 스토리를 공유하면서 시끄러웠다. 이렇게 지나가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누가 어떻게 여기를 알고서 피할 수 있을까. 확진 환자가 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불안해할 뿐이다.

정말 끝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심해질 수도 있는데, 그때에는 어떻게 될까 싶은 생각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사람들은 곧잘 내뱉는다. 그 말이 밖으로 향할 때에도 시큰한데 자기 안으로 그 대답 없는 말을 담아야 한다면 과연 감당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자기 일이 되면 너무 난감해진다. 남의 일이니까 넘어갈 수 있지, 당장 내가 아프고 내 가족이 환자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 견뎌낼 것인가. 무슨 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기도만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것인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시시각각 조여 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어제였다.

소설을 읽고 하던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전부다. 백신도 내 뜻대로 다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도 저마다의 입장이란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는 소용돌이치고 있다. 빠져들어가는 것인지, 빠져나오는 것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몸과 정신을 내맡기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 힘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몰고 가는가. 오늘 아침 긴 대기를 하면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싶은 당혹감이 있었다. 곧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 2년 동안이라는 시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때에도 우리는 코로나를 끝내려고 노력했다. 서로 조심했고 치료제를 만들었으며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이 모양이다. 사람들이 곧 지쳐가지 않을까. 만약 이것이 아직 본격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이다음에 오는 진짜는 어느 정도의 위력으로 우리를 덮칠 것인가. 그때 우리는 이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누리는 안정이란 것이 하잘것없는 토대 위에 지어진 오막살이에 불가한 것을 나는 목격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그런 예시들은 남아돌 만큼 충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내일에도 살 것을 당연시한다. 마치 돈 주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옳은 일인가.

그렇지 않으면 징징거릴까.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 것이 합당할까.

아이들에게 어른스럽게 일러줄 말이 없다. 지금은 혼란의 시대라고 그러니까 각자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많이 미안할 것 같다. 그리고 오래 후회할 것 같고.

우리 집은 가난해, 그러니까 참고 살아. 그런 식으로 내던지는 말 같아서, 마치 나는 잘못이 없으니까 팔자려니 하고 살라는 말 같아서 아침이면 고맙게 밥을 먹자고 깨운다. 무섭다는 말도 하지 않고 조심하라는 말도 하지 않고 밥 맛있게 먹어, 그러면서 아침을 맞이한다. 겨우 그렇게 그렇게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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