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느닷없이 학교에서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 전날부터 낌새가 있어서 각오는 했지만 월요일 날이 밝으면서 코로나 확진 소식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게 되었고 서로 각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강이는 자가 격리가 정해졌다. 같은 반 친구의 확진 소식이 사람을 감금시켰다. 우리는? 우리는 일을 해야 하고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월요일은 그렇게 준비되지 못한 격리를 시작했고 화요일 하루를 다 기다려도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전날 평소에 몇 배가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일처리에 과부하가 생겼을 것이다. 정체가 빚어진 것이다. 화요일을 우두커니 보내는 우리는 영락없는 끈 떨어진 갓 신세인 양 헐렁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황이 전개되는 막막함을 잠시나마 멀뚱히 바라봤다. 여기에서 더 심해지면 그야말로 소설이 된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된다.
수요일 아침, 그래 아침이 시작되려던 이른 시간에 음성 메시지를 받고서야 주름이 펴지더라고 인정한다. 우리는 진심으로 걱정을 했던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으면 감정이 혼돈 상태를 경험한다. 말하자면 말하려던 것을 순간 잊어버리고 말았을 때, 내 세포들이 느끼는 전반적인 어정쩡함 말이다. 하품이 실컷 완성되지 못하고 잠깐 방심하던 틈에 사그라드는 그런 기운 말이다. 은근한 기대는 정말 은은할까, 은근하다는 말과 은은하다는 말이 결정적으로 다른 노선이었다는 것을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새벽에 나는 깨끗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은은하지 않다. 사람은 은근히 기대어 산다. 무엇에든, 그것이 자기 쪽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도취적이고 자기에서 멀어지면 그만큼 의존형 인생이 될 뿐이다. 우리는 은근히 아는 척, 그리고 모르는 척할 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것이 아니꼬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내가 얼마나 변이 가능한 미꾸라지 성질인지 제대로 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근할 사람은 출근을 해야지, 일이 쌓이다가 막히면 그것을 누구 탓할 것인가. 사람들은 모두 피곤하고 불안하고 더구나 한겨울 날씨가 금방이라도 폭설을 쏟아낸다고 해도 눈을 치워야 하지 않는가. 차들이 다니지 못하면 빵빵 거릴 것이며 그 사이 민원이며 불평불만이 어딘가에서 터질 테니까. 누구는 더 아프고 누구는 이 상황이 진절머리 나게 싫을 테니까, 그러기 전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일이 길을 막지 못하게 배수로를 정리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벌써 키가 많이 자라서 우리 뒤에 서서 우리를 넘어다 보고 있다. 어디, 얼마나 잘하고 있나? 버릇없이 반말을 지껄이는 저 어린것에게 우리는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내 탓이오, 세상을 더 산 내가 미안하다며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 버릇없는 것이 힘까지 세지면 사람 말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꼴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봤었다. 이쯤에서 내가 미안하니까 그만 화 풀었으면 합니다. 나는 비겁하기로 한다.
초등학교는 방학을 서둘렀고 중학교도 하루나 이틀 더 지켜보다가 등교하기로, 덕분에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도 주말까지 모두 집에 머문다. 머물렀다. 쉬게 하는 것, 그것은 어떤 일인지.
오늘 일요일까지 6일을 그대로 강이는 자가 격리를 했다. 나도 강이처럼 수업을 하지 않고 지냈다. 우리 둘은 서로 속을 잘 알 것이다. 지금 불편한지, 그대로 좋은지. 하지만 이제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서 더 이대로 머물렀다가는 이전에 나를 어색해할 것이다. 어색한 것이 짙어지면 멀어지고 급기야는 다 잊고 말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겨울잠에 빠지고 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오늘 강이는 확인 검사를 받으러 간다. 이제 일어나 준비를 한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렸다. 자가 격리가 없었더라면 이번 성탄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매일 확진자 숫자를 알려주는 안전 문자를 보면서 다른 데 가지 말고 어서 집에 들어가자는 말을 연신 반복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처럼 똑같이 집에서 나오는 일 없이 머물렀을 것이다. 다만 이방 저방 오가면서 떠들었을 테니 조금 시끄럽긴 했을 것이다.
소음이란 것도 활기였다고 생각하면 나무라기만 할 일도 아니었다는 그 차이가 크리스마스가 지난 일요일 아침에 동그마니 남았다. 같이 앉혀놓고 밥을 먹어야겠다.
같이 옆에서 떠드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냐면, 하고 옛날이야기처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산이는 그동안 호그와트 레고를 부지런히 조립해 가면서 간혹 거실로 나와 TV에서 방영해주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봤다. 내가 나이 먹었다는 것, 나는 산이처럼 본 것을 재미있어하지 못한다. 그것을 낭비라고 여긴다. 내 주름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아니 해리포터 시리즈가 방영될 때마다 확인할지도 모른다. 나이를 덜어내고 싶다. 그렇지만 나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 내게 친절할 것 없다. 나는 눈이 희미해지는 것을 즐긴다. 걱정도 하면서 즐긴다. 다만 불을 아껴서 불을 밝히고 싶은 것, 그 소망이 아직 남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오늘은 더 춥다. 하지만 지금 강이는 가볍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