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멈출까.
그 적당한 곳을 생각하는 것은 이기도 아니며 이타는 더욱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자의적이란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자의적 恣意的이란 일정한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일입니다.
아무래도 멋은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입니다. 자연스럽되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경계하는 말이 ´제멋대로´ 아니었던가.
제멋대로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며 그것을 방자하다고 읽습니다. 자 恣는 내키는 대로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셀 수 없는 갈래를 다스리는 하나의 공화정 같습니다. 하나의 큰마음은 다른 마음들의 대표 기관이며 다른 조그만 마음들은 대표 마음의 의사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주권이라고 표현합니다. 민주주의라고도 하는 그 작은 마음들을 잘 보듬으면 평화가 깃듭니다. 평화가 깃든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평화롭습니다.
그 마음, 그 마음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저것은 차 次.
어떤 모자를 쓰느냐는 정체성이 되기도 합니다. 속은 그렇지 않더라도 겉에서 먼저 갈라치기 당하는 일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일일이 내 속을 알아주는 인연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자도 잘 쓰고 있어야 합니다.
저것은 버금이라고 하며 버금이란 말은 요즘 자주 등장하는 차선 次善이란 말처럼 으뜸 다음의 것을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최선 最善이란 말에서 오히려 겸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겸손하니까 정성을 다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거꾸로 겸손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름다움을 손으로 만드는 장인이 되는 것 아닌가.
오, 작품이란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며 그랬을 때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역시 마음의 작품입니다.
이렇게까지 멋진 말을 떠들 줄은 몰랐는데 새벽에 성경을 꺼내 든 마음이 결국 여기로 방향을 잡아준 듯합니다.
이런 것을 사람들이 가끔 ´만세´라고 외칩니다.
월요일 아침을 기다리는 지금은 만세를 외치기 적절한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가는 저 차 次라는 말은 또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 副라고도 쓰는데 우리가 잘 아는 정 正과 부 副가 바로 그것입니다. 부의장, 부통령은 으뜸에 버금가는 사람들입니다. 책임은 덜하더라도 그만큼 자유로울 수는 있어도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여야 하는 자리라는 경계의 뜻도 거기에 있습니다. 선현들의 선견지명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품이 나올 때에는 입을 가리고 하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차 次에는 하품 欠이 들어있습니다. 하품하는 것만 보고서도 자세를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하품하면서도 마음이 들어앉아있으면 다른 일에도 크게 그르치는 일이 적을 것입니다. 그것을 최선이라고 이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을 할 때는 각오를 다지고 의지를 세우지만 끝에 와서는 왔던 길을 돌아보고 반성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가 지난 총선 다음에 더 이상 정치 비평을 하지 않겠다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마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사람이니까. 사람이어서 더 좋은 말도 많았지만 실수한 말로 괴로워합니다. 사람이니까요.
아침이면 여기에서 거기로 날아가는 이 편지 같은 것이 어떤 때는 펼쳐지지도 않고 사라질 것입니다. 차라리 그것이 평화롭다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쓰고자 하는 이는 결국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기 利己에서 비롯합니다. 그것을 말이 빚진다고 하니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러니 저도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합니다. 덕분에 저는 좋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멈추어야 할 때, 아니면 멈춰야 될 때에 꼭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
이렇게 생각하면 자의적으로 흐르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나마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를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이 솟습니다.
이른 봄날에 뭣도 모르고 고개를 내미는 새싹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기분 좋더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올해도 아퀴를 짓는 연습을 합니다. 날마다 연습, 그것이 또 괜찮더라는 말씀도 건넵니다.
저는 먼저 길을 나서겠습니다.
새벽을 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벌써 새해가 뜨는 곳으로 내디뎌 볼까 합니다.
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그 길을 즐기는 것이 소소한 기쁨인 듯합니다. 헤어져도 좋을 곳을 찾는 여행이 이 길 아닌가 싶습니다.
로맨티시스트. 하나만 난 척하자면, 로맨티스트 그러지 마시고 로맨티시스트.
예수님은 여행가며 로맨티시스트였습니다.
그 길을 찾아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