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학생들 노트에 ´엄마 사인´이라고 써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사인 받으라는 뜻인데,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이가 대견할 때 그러고 걱정을 좀 나눠야겠다 싶을 때도 한 번씩 ´사인´을 표시합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우리 아이의 현재를 조금이나마 알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물론 요즘 어머니들은 과거와 달리 많은 영역에서 솜씨를 발휘합니다. 의사전달이 명확하고 정보의 양과 질이 월등합니다.
하지만 대화가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은 줄줄 꿰는데 정작 ´우리 아이´에 대해서는 그만큼 정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것이 거리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리감일 것입니다.
서로 어긋나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학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나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경험담입니다.
착하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웃음이 인상적인 여학생이 엄마하고 같이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이었습니다.
3일째 되면서 수업에 늦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착실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유들이 지각하는 날마다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점에서 의심했어야 했는데 나이가 이쯤 들어도 첫인상에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하나 변명하자면 아이들이 둘러대는 대부분의 핑계는 거의 다 경험해 본 것들입니다. 그래서 알고서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일러주고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돕습니다. 누구나 공부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으니까 오죽할까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각으로 시작하던 것이 결석으로 이어졌습니다. 왜 그 학생 어머니에게 한 번 물어볼 생각을 못했느냐면 그 물어보는 것까지 어색할 정도로 - 의심할 여지가 없이라는 말은 틀림없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 완벽해서 그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납득을 했던 것입니다. 학생을 먼저 의심하고 대하는 어른은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전에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맞지 않고 학생이 하는 말과 옆에 있던 사람이 전하는 말이 완전 다른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것입니다. 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분명히 걸려듭니다. 거짓말은 그렇게 마법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바로 여기입니다. 아이가 거짓말인 것이 들통이 났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방금 그 거짓말을 위한 다른 거짓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놀라면서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기에 살짝 흔들리는 나를 어쩌면 아이가 먼저 파악했는지도 모릅니다. 태연하게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아이에게 믿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순간 이후로 아이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뻗쳤습니다.
문제는 거짓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여겨지는 저 공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이를 탓하지는 않는데 사실 두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고 남긴 흔적은 거짓말로 구멍이 쑹쑹 뚫린 실체들, 그때 다른 애들이 했던 말들이 맞았구나, 그때 그 학교에서는 아무 행사도 없었구나, 사실은 아이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구나 등등.
아이가 그만둔 날 밤에 집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어머니가 그러더라고 들려줬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게 대해서 아이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조금씩 하게 된 것 같다고."
심리나 심성, 인성이란 말을 우리는 은연중에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늘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인 것처럼 대합니다. 가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그 사람들이 말하는 학교는 모두 ´대학교´를 가리킵니다. 그 찰나 같은 순간에 끼어있는 감정과 위선과 우월감의 소용돌이.
옛날에 가정환경 조사를 하면서 부모 학력란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거기에 그렇게 적으셨습니다.
´불학´
不學도 아니고 불학 그러셨던 것을 학교에 제출하곤 했습니다.
해마다 확인하는 우리 부모의 ´불학´은 내가 처음 알게 된 타인의 학력이었습니다.
요즘은 다 ´골프´를 친다고 그럽니다.
흔히 하는 말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들.
이만큼은 다들 하고 살지? 그러는 투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로마사´는 모릅니다.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내가 역행을 하는 것인지 순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요즘 로마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트교를 알려면 성경이면 족할 줄 알았는데 로마사가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불학´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쓸모없는 것들을 배우는 삶은 불학입니다. 물론 그 쓸모라는 것을 누가, 어느 세상이 규정하는가를 또 따져봐야겠는데,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결국 서로 오만불손한 것입니다. 불학의 오만함은 가엾습니다.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루카 5:13
조물주 하느님께서 우리 어머니에게 ´엄마 사인´ 그러면서 노트를 내어주시면 우리 어머니는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적으실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싶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