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48

아침에,

by 강물처럼


시인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그랬습니다.

고향 질마재에 부는 바람은 어떤 것이었을지 훗날을 살아가는 저는 짐작도 가닿지 못합니다.


어릴 적 나를 키운 것의 8할은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60명이 넘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던 교실도 아니고, 아침부터 밤까지 바빴던 우리 집도 아니고.


어디에서 바람이 불었던가. 나한테 불던 바람은 천공에서 부는 그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 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몰랐습니다. 수녀님이 떠나시는 것을.


짧으면 2년, 길면 3년,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저는 자랐습니다. 가장 물기가 많았던 때였던가, 아니면 가장 행복했던가 그랬을 겁니다.


어째서 수녀님을 내 편이라고 완전히 여겼을까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수녀님 두 분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옛날에 있었던 우연들이 합당해집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이 없을 만큼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내 인연에 만족하는 법을 배울 것만 같습니다. 그러려고 그랬던 것들이 단맛 나는 술 같습니다.


지금도 수녀님을 보면 반가운 생각이 먼저 달립니다.


애들처럼 수녀님 가방을 뺏어 들고 한동안 그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어 집니다.


아버지의 나이를 내가 먹고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하나씩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는 것들이 겨울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 마냥 눈이 시립니다. 파랗게 흔들리는 바람이 거기 있습니다.


헤어짐이 왜 쓸쓸하지 않았겠나.


사람이 한 곳에 머물다가 떠나는데 그 달랠 길 없는 우수 憂愁로 뒤척였을 낮과 밤을 채우는 기도.


허전한 것을 맑게 담아내는 물그릇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적 있었느냐하고 물으시면 우리 수녀님들을 대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르코 1:40




루시아 수녀님께서 다음 달 떠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정이 들었나 봅니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자주´라며 저희들끼리 푸념입니다.


한 달이 다 남지 않은 시간, 또 서성거리는 내가 있습니다.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떠나고 헤어지는 일. 그런데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벌써 서운한 것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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