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오타´가 났다고 합니다.
손으로 직접 문장을 적을 때도 그렇지만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글을 작성하는 경우에는 그 실수가 더 잦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곱고 아름답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 말이라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말은 애정을 갖고 들여다볼수록 진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보석 같아서 기쁨을 주기도 하고 찬란하게 빛이 드는 언덕을 발견한 환희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글을 붙잡고 그것을 읽거나 쓰면서 자기를 갖춰가는 것입니다. 깎으면 깎을수록 부드러워지고 쌓으면 쌓을수록 너그러워지는 그것은 하나의 종교를 닮기도 했습니다. 글을 다듬는 그 사람은 열심한 신자이면서 훌륭한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도 될 것입니다. 평화를 기원하고 안녕을 비는 사람이 되어가는 1년 사시사철을 보내는 것입니다. 꽃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짙은 향기가 나는 생각들, 관념들, 사상들, 그런 가치관들이 모두 화원을 이룹니다. 보기 좋은 꽃은 여인 같습니다. 생각이 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여인이었으며, 애인이었고 숨결이더니 하늘로 하늘로 피어오르는 꽃, 그러면서도 봄과 가을로 사람의 우수를 달랠 줄 아는 넋이라니요. 몇 번의 생을 지나온 영혼을 가지런히 대접하며 떠오르는 담담한 미소는 말과 글을 다듬는 밭에서 나는 열매입니다. 감자알처럼 씨알이 굵고 포동한 것이 살이 찔 것 같습니다. 문장을 씻고 솥에 얹혀 푹 쪄내 여럿이서 나누어 먹습니다. 감자 냄새가 좋으면 사람들도 좋아집니다. 다들 이참에 좋아 지내기로 합니다. 땅에서 나는 것으로 이만한 다정함이 어디냐 싶어서 하나 더 먹으라고 냉큼 앞에 놓아주면, 말이며 글이 흔들흔들 어깨춤을 추며 사람을 신명 나게 합니다. 말이 곡조를 타면 노래가 되고 글이 감상에 젖으면 시가 됩니다. 노래와 시는 사람이 꾸는 꿈입니다.
´오타´는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잠이니까, 여유가 있습니다. 일은 깨어난 후에 벌어집니다. 잠에서 깼을 때는 가능한 주위가 조용했으면 싶은 이유입니다. 꿈인 듯 거닐면서 내가 나로 돌아오는 그 1분 동안을 기다려주는 세상은 온유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의지가 다 뻗치지 못하는 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신에게 의지하는 순수의 시간, 1분. 매일 눈을 뜨면서 그 공간을 감각합니다. 살아있음으로 향하는 화살표, 발가락 끝에서 시작하는 스위치 온, 발열 發熱. 그때 나는 말 그대로 깨어납니다. 그리고 ´오타´가 시작됩니다. 그 순수한 순간을 하루 내내 잊지 못하고 추억하는 가운데에서 내 오타들은 장난스럽게 춤을 춥니다. 엉덩이를 흔들지도 모릅니다. 오타가 오타를 데리고 파티에라도 가는 날에는 나도 더 내 안에 머물지 않고 바람을 쐬러 나갑니다. 누군가가 길을 걷고 있다면 세상에 균형이 잡히려고 자전하는 것, 그러면서 멀리 공전할 줄 아는 우리는 아무래도 창조물이 맞습니다. 다시 오타를 정리하면서 양말도 벗어서 내놓고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샤워를 하며 옷도 갈아입습니다.
사랑스러웠던 오타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 더 기억할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이 생겼습니다. 지층이 되어 나라는 땅을 두텁게 만들어 줍니다. 그 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집을 짓고 집을 짓기를 바랍니다. 비가 내리면 물이 흘러 강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콩을 심어도 좋고 예쁜 부추 꽃이 만발해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은 어떨까 싶습니다. ´오타´가 있었던 장소를 가리키며 예전에 여기가, 그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꿈을 꿉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르코 2:5
안녕하세요, 이제 일어났습니다.
어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습니다.
혹시 제가 꾼 꿈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