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분배, 무엇을 중요시하느냐, 그에 따라 우리 사회는 보수냐 진보냐 나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나눌 것이 없고 나누지 않으면 성장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둘 다 필요합니다. 둘이 있으면 꼭 다툽니다. 그것이 본성 같은 것인가 싶습니다.
다투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당연히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됩니다.
본질은 잊고 그저 다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익을 위해서 명분 때문에 싸웠지만 나중에는 그마저도 다 잊어버립니다. 그냥 싫은 것입니다. 듣기 싫고 보기 싫고 꼴 보기 싫은 것입니다.
성장과 분배처럼 사람 사는 데 중요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배가 산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영문도 모르고 그 배를 쫓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되려는지요.
처음에 둘을 만들어 놓은 것은 잘 지내라는 뜻이었습니다.
잘 지내지 못하는 둘은 피할 곳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상대가 됩니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집니다. 내가 있을 이유가 사라집니다.
각각이 잘 되고 그것으로 둘이 어울리면 진보도 보수도 제 역할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보다 많은 것을 알지만 그만큼 밝지 못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얼굴에도 마음에도 불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종교는 그런 어른들을 위한 촛불 같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반짝일 줄 아는 아이들은 온기를 지녔습니다. 천국은 아이들의 것이라는 말씀은 그래서 진리입니다.
아이들은 이념이나 주의는 하나도 모르고 그저 ´사람´을 봅니다. 사람을 보면서도 지위나 높이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릅니다. 반가워하고 돕습니다. 돕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돕는 그 손을 우리는 고사리 같다고 그럽니다. 거기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음도 다 녹습니다. 그것을 천진함이라 부르고 그것은 사람의 고향 같은 정서입니다. 예수님은 반박하지만 그 반박의 정서는 늘 ´사람´이었습니다. 보수냐 진보냐, 현학의 즐거움은 한때뿐입니다.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랑하는 것이고, 봉사는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유위숙 스콜라스티카 수녀님께서 수상 소감으로 들려줬던 말씀입니다. 노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위로자, 수녀님을 위한 추모 미사가 콜롬비아와 대구 대명 성당에서 있었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수녀님의 거룩한 자취를 기록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하나 하늘에 걸어 봅니다. 대책이 없다면서도 싱글벙글하시던 그 모습을 본받아 저도 무작정 약속 먼저 해두고 싶습니다. 꼭 수녀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겠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