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53

아침에,

by 강물처럼

그러니까요,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으로 전부가 아닌 것을 깨우쳐 줍니다.


고백하자면 옛날에는 열심히 살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은 역설 逆說입니다.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다.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잘 몰라서 게을렀다면 지금부터는 일부러 게을러지겠습니다. 피할 것은 피하겠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잊겠습니다. 잘 게을러져서 챙길 것을 챙기겠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 여유를 회복하겠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다독여줄 줄 아는 그런 심장을 마련하겠습니다. 밤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싶고 꽃이 피고 지는 날을 찍을 수 있는 눈, 그런 화소 畵素가 저한테는 필요합니다.


그래서 게을러지기로 마음먹습니다.


느슨해지지 않으면 찰나를 가질 수 없습니다. 내가 챙겨 먹어야 할 것이 거기 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실컷.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비슷한 팔자가 하나 있습니다.


내 탓인지, 그의 탓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이제는 바꿀 마음도 없습니다.


찬란한 것이 왜 찬란한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세월을 지나온 파도가 만든 교향곡, 그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모래알을 듣고 있으면 허물어지지 못한 내가 외톨이 같습니다.


빛이 되어 본 적 없는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바라봅니다.


같은 해, 나와 같이 초라한 동네에서 태어났고 학교를 다녔으며 성당에도 다녔던 친구.


똑같이 대학에도 떨어졌고, 혼자 몰래 다녀오려던 군대도 결국은 강원도 춘천까지, 아니 양구군 팔랑리와 인제군 천도리, 옆 동네에서 군 생활을 다 했습니다. 너도 맞았냐? 서로 병원에까지 맞고 후송 갔던 추억담이 같았으니까요.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아직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었던 같습니다.


나도 버티니까, 너도 버티길, 네가 버티니까 나도 버텨야 하는 거.


젠장 맞을 팔자는 그 뒤로도 얼추 비슷한 길을 갑니다. 정말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결혼도 1주일 차이로 했습니다.


서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그 순서도 내내 같습니다.


살면서 처음 수술대 위에 올라서 긴 수술을 하고 뱃속에 위 胃를 전부 떼어낸 다음날, 그 친구는 새벽 작업을 하다가 오른손을 다쳤습니다. 손가락을 다 잃었습니다. 빈틈없이 야무진 일처리로 소문난 친구가 왜 그랬을까, 그때 울컥 눈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복도 이쪽에서 저쪽까지 걷는데 그 팔자라는 말이 문득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너는 좀 다르게 살지, 그러냐.




몇 개, 잊지 못하고 내 기억에 남아 기억 자체가 된 말들이 있습니다.


95년, 늦가을 비가 내리던 새벽, 동경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휴대폰이 없었고 기숙사에 놓인 전화 하나로 모두가 사용했던 시절입니다.


밤 열두 시가 방금 지났을 시간입니다.


전화 왔다며 나를 부르는 소리, 국제 전화니까 빨리 받아보라는 말에 후다닥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거기서 뭐 하냐?"


대뜸 그 소리가 먼저였습니다. 반갑기 전에 비 내리는 밤에 청승맞다 싶어서 시큰둥하게 대꾸했습니다.


"잠 안 자고....."


거기는 비가 안 왔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긴 숨을 들이켰습니다.


"나 방금 죽을 뻔했다. 여수 가는 길인데 졸음운전하다가 거의 사고 나기 직전이었다."


친구가 죽을 뻔했다는데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서 방에 들어가 잠이나 자고 싶었습니다.


그다음 말은 영영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보고 싶은 거 보고 살아야지, 이게 뭔가."


"거기서 고생하지 말고 들어와라, 얼굴 보면서 살자."




기도하지 않는 나는 기도합니다.


그가 잘 살기를, 나보다 오래 살기를.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으니까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 마르코 3:5




애틋한 것만 갖고서는 요리가 안 됩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도 되고 애인도 되고 부모 자식도 됩니다. 모든 관계는 서로 배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없어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먹을 것이 생깁니다. 먹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도 파도도 햇살도 저마다 맛있는 식사를 즐깁니다.


오그라든 것들에게도 먹을 것을, 그러면 다 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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