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51

아침에,

by 강물처럼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꽃이 만발합니다.

칡 나무와 등나무가 한겨울에 무슨 일인가 싶게 서로가 하나가 되어 사람을 칭칭 감아 오릅니다.


더 자고 싶은 것은 아이 적이나 지금이나 내내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란 것이 있긴 있나 봅니다.


그대로 꽃구경이나 하면 좋겠다 싶은 몽롱한 기운에 기대고 나면 거기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나는 것을 압니다.


무엇을 해도 갈등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봉합시킵니다. 잠시 시끄러운 틈을 막고서 하나로 일치시킵니다.


내 명령어는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를 입력하면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성급하게 자라던 가지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추어 버립니다.


내 자잘한 욕구들이 해결됩니다. 그러고 나면 입장이 바뀝니다.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납니다.


이를 닦고 물을 마시면서 목을 타고 내려가는 청량함이 또 반갑고 좋습니다.


컴퓨터에 불이 켜진 것이 말 잘 듣는 아이 같아 그것도 좋습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됩니다.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은지요.


오늘은 장사를 해볼까, 그 생각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간간이 안부를 묻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겨우 둘이냐고 그러시겠지만 흔하게 말하는 의례적인 인사 말고, 시골집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것처럼 나에게 때가 되면 흔연히 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밥때를 놓치면 배가 고프듯이 잘 지내고 있느냐는 무심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은 ´어느 때´가 있어서 내가 조금은 사람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해 줍니다. 그러니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중에 부안에 살고 계시는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혼자 계시면서 겨울은 어떻게 지내는지 엊그제 통화를 했습니다. 요 며칠 전 혹시 전신주 위에서 있었던 감전 사고 보셨는지요.


결혼을 앞둔 서른 후반의 젊은이가 그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뉴스였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원청 업체니 하청 업체니 하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무엇보다 벌써 지난 일인데 어쩌겠냐고 산 사람이나 살게 취재하지 말라는 투입니다. 그의 인터넷 쇼핑몰 계정에는 끝내 구입하지 못한 고압 및 특고압에 사용하는 39만 원짜리 절연 장갑이 담겨 있었습니다.




부안 선생님도 군대 시절에 그와 비슷한 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그 뒤로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오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우연히 병원에서 인연이 되어 알게 된 후, 1년에 한 번은 멀리 나들이를 다닙니다. 우리는 나들이도 산으로 가는 멋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때마다 밤잠을 쉬 들지 못하는 그를 목격합니다. 소주를 반 병쯤 마셔야 진정되는 나 같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진동이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술에 중독되거나 술에 기대어 사는 인생도 아닙니다. 그는 겨울이면 깊은 산에 올라 칡을 캡니다.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캐는 칡은 어른 팔뚝보다 굵고 참합니다. 칡이 다 그렇지 하겠지만 나도 좀 아파본 입장에서 이 칡은 어떻게 먹어도 무겁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진들을 봅니다. 칡을 캐러 다니느라 바쁘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 목소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몸살을 앓고 있었다며 곧 나아질 거라고 털털한 웃음입니다. 그러면서 내 몸에 확신이 없으니까,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흑칡도 있고 일반 칡도 있고 그렇습니다. 칡즙을 저도 집에 두고 마십니다.


어제 오후에 함라산을 다녀오면서 골짜기에서 기세 좋게 몰아 대는 겨울바람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그 바람 속에서 땅을 파고 돌을 쳐내며 깊은 칡을 캐냅니다. 칡이 어디에 얼마나 좋은지는 인터넷에서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부안 선생님은 농사꾼입니다. 겨울 한 철도 허투루 보내지 못하는 성실함이 그의 매너입니다. 가끔 사람 냄새가 맡고 싶어질 때 그때 저는 휴대폰을 드는 것 같습니다. 향기로운 말소리에 귀먹는다는 시구를 이해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아침 묵상은 부안 선생님을 빼고 돌려야겠습니다.


그가 알면 나무랄 것입니다. 괜한 짓 했다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좋은 칡을 정성껏 즙을 내서 팔고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시면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안 하던 일이라서 손에 익지 않은데 그래도 덜 부끄러운 것이 부안 선생님을 아니까요.


아, 오늘 복음 말씀이 무엇이었던지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르코 2:22




묵상도 아니고 기도는 더욱 아닌 시간을 보냈습니다. 복음은 그래서 복음인 듯합니다.


저쪽에서 부는 바람이 내게 닿지 않더라도 다 닿은 것처럼 살아지는 것.


먼 데에서도 전해지는 일체감,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 든든함. 겨울이어도 봄일 수 있는 어엿함.


일몰 속에 일출이 그려지는 멋짐, 노련함, 그리고 약속들.




부안 선생님이 통화 끝에 하신 말씀이 뭐였냐면요.


´내가 뭐라고´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2박 3일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만져봤습니다. 내가 할 말을 그가 먼저 한 것이 조금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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