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66

아침에,

by 강물처럼

성당이나 가톨릭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명동 성당´이란 말은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처럼 전주는 모르지만 한옥 마을은 알고, 거기 있는 ´전동 성당´도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에 누가 어디 성당 다니냐고 물으면 두 가지 답을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성당을 안 다니는 사람이면 ´전동 성당´ 다닌다고 그랬고, 성당을 다니는 사람한테는 ´서학동 성당´ 다닙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다들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줄곧 다녔던 서학동 성당의 모 母 성당이 전동 성당입니다.


전주 교육대학교 앞에 있는 조그만 성당이었습니다. 걸어서 15분이면 치명자산이 있는 곳입니다.




5학년이었습니다.


주먹 야구도 하고 성당 마당에서 시끄럽게 뛰어놀면서 사무장님한테도 주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수녀원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열심히 놀고 있으면 수녀님이 한 번쯤 나와보실 것도 같았고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때가 그때였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저희 어머니에게 한편 미안하게 생각하는 대목 중에 하나가 그런 것입니다.


그때도 가끔 일기를 썼었는데, ´수녀님이 엄마였으면 좋겠다. ´


그런 말을 써놓고 엄마한테 딱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 마르코 6:56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옷자락 술, 옷깃에 손을 대려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수녀님께서 앞자리에 앉아 미사를 보고 계셨습니다.


검은 옷차림에 검은 베일, 평범하지 않은 그 색깔이 하나의 경계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산에 가면 산문 山門이 있고 계절에도 들고 나는 문 門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들의 표지 같았습니다.


신부님의 로만 칼라와 수녀님들의 베일은 저에게 그런 분위기를 건넵니다.


살짝 집개 손가락 손톱만큼 대어봤습니다.


떨리지는 않았는데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가끔 운전을 하다가 무심코 실내 거울에 걸어놓은 묵주를 만지고는 합니다.


그러고 나면 평화로운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저보다 큰 인형을 쓰다듬으면서 평화를 구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내가 어머니 말을 잘 듣지 않을 만큼 머리가 컸을 때부터 묵주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지금 제 차에 달려 있는 로사리오도 그것입니다.


시절 따라 사람이 순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나 같은 사람이´라고 되뇌기는 하지만 그 뒷말이 다릅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해서 다행이다는 말이 아롱거립니다.




십자가를 두고 사람들은 두 타입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고개를 숙이고 외면합니다. 그리고 하나는 열심히 올려다봅니다.


사실 두 타입 모두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둘 다 응원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니까요.


오늘도 이렇게 파이팅을 보냅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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