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모든 기능이 떨어졌는데 식욕이 왕성합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에 서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울까요, 그것마저 불편할까요.
단순히 식욕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만약 성욕이라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순 耳順이라는 말 참 편안한 말입니다. 나이 60쯤 되어야 비로소 듣는 귀가 순해진다고 하니 다른 것을 굳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악취미 같아 보입니다. 쉽게 늙지 않는 것, 사람들은 늙지 않는 방법을 찾고 다니는데 늙지 않아서 문제라고 떠드는 것이 어째 악동 같아서 죄송합니다.
오래된 자동차를 더 타고 싶습니다. 고쳐서 타는 것이 맞습니다. 오래된 부품부터 하나씩 갈아 끼웁니다. 그때마다 차가 움직여 줍니다. 그러다가 더 바꿀 것이 없거나 바꿔도 움직이지 않았을 때 폐차가 됩니다. 누가 나를 더 타고 싶어 할까 생각합니다. 나는 나를 더 타고 싶어 할까, 물론 그때가 언제냐는 사람마다 중요할 것입니다. 내 부품을 새로 갈아 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또 어떻게 봐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자동차에는 없는 ´감정´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부품은 바꿀 수 있는데 감정은 교환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 먹으면 감정도 나이 먹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또 차원이 다른 부품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한 글자로 말하면 욕 欲이 됩니다. 식욕이나 성욕은 말할 것도 없고 명예욕이나 출세욕 같은 자잘한 욕도 많습니다. 하긴 나무에도 그러한 욕이 있습니다. 나무는 고요하려 하나 樹欲靜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風不止.
그래서 내 감정을 바람 쐬러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람에는 낡아갑니다. 나룻배처럼 삐걱거리지 않고 쇠처럼 줄어듭니다. 감정은 살아서 풍화되는 경험까지 쌓습니다. 그러니 감정이야말로 부처님이나 돌, 시냇물 같은 것을 본받습니다. 감정은 내 욕들을 끌고 다니는 맨 앞자리를 지킵니다. 그것은 김, 이, 박 같은 성 씨 氏를 닮았습니다. 방향을 유도하는 그래서 강물, 빗물, 찬물 그러는 것처럼 가는 곳이 달라집니다. 물론 물이라고 해서 다 물도 아닙니다. 오물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그러지 않으려고 일단은 애쓰고, 그런 다음 물이 되고 나서 어떤 물이 되느냐, 그것은 내 감정의 오롯한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꾸지도 못하는 천형 天刑을 받아 몸 안에 넣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뭐라고, 내 감정이 고생입니다. 수술도 안 되고 수습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 같은 존재뿐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극성이고 우크라이나 젊은 아가씨는 러시아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기로 했고 20대 버마족 여성 퓨는 살면서 한 번도 팔굽혀펴기를 해본 적 없는 팔로 미얀마의 무장투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날이 밝으면 두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겠지요. 저보다 다섯 구름 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아침을 맞이할까요.
부러운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의 지구인들입니다.
사람이니까 허영스러울 수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다 욕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 옆에서 잔치를 벌이는 허영은 싫습니다. 사랑스러운 허영을 보고 싶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이 모두들 있었는데요, 순해지는 대신 늙기만 했는지, 아니면 고치기만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 부는 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