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65

아침에,

by 강물처럼

아무 일도 아니지만 저는 반갑습니다.

별거 아닌 것이라도 조금 놀랍습니다.


그 말이 어떤 것이면 좋을까, 한 번 물었던 것도 같습니다.


은근히 스치듯 내게 달아놓은 것은 ´양 떼´ 그러니까 양 떼를 지키는 ´목자´였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부대끼고 있었으니까요.


백신 3차 접종을 어제 오전에 마치고서 앓던 참이었습니다.


1시에도 깨고 다시 3시에도 깨면서 끙끙거렸습니다.




금요일 오전, 두 개의 마음으로 살짝 번거롭습니다.


번거롭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눈치가 보이는 작은 일입니다.


내 삶의 태도를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끝장을 내듯´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미련이 남고 후회가 늘 여울집니다.


그래서 선명하지 못합니다. 칼로 반듯하게 자른 두부모 같은 면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뒤가 물러서, 우유부단해서, 겁이 많아서, 나와 함께 먹고 나를 키운 것들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만 같아서´ 그것이 반찬이었습니다.




어제 아침, 금요일 오전 미사가 끝나고 수녀님께서 제의실에 들어오셨습니다.


다음 주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시는 수녀님 뒷모습이 허전해 보였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실 때까지 떠나는, 계속 떠나는 물결이 거기 있었습니다. 다른 말도 못 하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 그러고 나왔습니다.




내가 사는 일은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 적당히 그것을 나누는 과정입니다.


어떤 날은 금요일에 빠지고 싶습니다. 어제도 주사 맞아야 하는데 미사에 가기 싫은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말을 꺼낼 생각입니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니고 도움이나 될까 싶어 복사 服事를 시작했을 뿐이라고 알려주고 그만 둘 생각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그 생각으로 용감해집니다.




그런데 어제는 수녀님을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정말 ´손님´이구나.


주인이 아니고 들 때에 들고 날 때에 나는 객 客에 지나지 않는구나.


가만 보세요, 거기가 어디든 내 집처럼 매일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아서 시간을 보내던 곳도, 거기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내 손길이 가고 정성을 쏟았던 데라고 하더라도, 떠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떠나면 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설 수도 없습니다. 허락이 필요해집니다. 그러니 3년 동안 내 방처럼 들어섰던 제의실이라도 내일모레면 다시 들어오기 어렵고 다시 만져 보기 힘든 가구며 냉장고가 아니겠습니까. 손님이니까요.




주인은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가장 좋은 손님이었는지요.




그 생각이 주사를 맞고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밤이 올 때에도 자분자분 끓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쓰겠구나.


내일 아침에는 그러겠구나 그랬습니다.


그리고 열이 났고 몸살처럼 아픈 것을 살살 달래면서 잠을 재촉했습니다. 내일 아침은 토요일이니까 일부러라도 늦게, 아니면 굳이 보낼 것도 없잖아, 나는 역시 손님이 적격입니다. 얼마면 되냐고 농담이라도 하면서 아침 묵상을 폴짝 뛰어넘을 생각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목자 牧者´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한 것이 아니라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일어서야지, 이 정도 단어들이 갖춰졌다면 진격해야지. 더 머뭇거리는 것이야말로 후회를 쌓는 일.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또 어물쩍 넘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고마운 일인 줄 알고 잘 넘어가 준 나에게 크게 쌈이라도 싸줄까 합니다. 작은 가시 정도는 함께 밀고 내려가라고.


의자는 자리를 잘 지킵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거기에서 기다립니다.


주인은 의자 같습니다. 예수님은 의자, 나는 나그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 마르코 6:34



마침 오늘 아침 복음에 나오는 목자를 보고 조금 놀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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