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64

아침에,

by 강물처럼

글쎄, 오늘이 ´입춘´이라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말, ´봄´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시죠, 입춘에는 대길 大吉.


봄이 거느리는 군사들은 다들 얼굴이 좋습니다. 일제히 한 곳에 모이는 날 합창처럼 봄기운이 완연할 것입니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봄을 도와서 먼저 길을 열어줍니다. 봄은 행진합니다. 겨울을 지나서 찾아오는 봄은 승전가 대신에 행진곡을 연주합니다. 꽃들, 뿌리가 좋으니 전부 좋은 얼굴들입니다. 세상에 난 것이 허공에 달린 것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땅속에 나서 땅속에서 자라고 땅속에서 뼈가 굵어진 뿌리들이 나무로 자랍니다. 나무는 정말이지, 신비롭습니다. 몇 개의 차원을 동시에 살아가는 그들은 봄의 위대한 전령들입니다. 그들에게 물이 오릅니다. 내 혈관을 지키는 파란빛이 나무들마다 감도는 날입니다. 나는 피를 너희는 물을, 땅속을 지키는 뿌리들에게 잊지 말고 건네야 할 말, 좋다. 고맙다.


내가 세상을 걸어 다니는 것도 다 네게서 오는 힘이었으니, 대신 나는 상춘곡을 부지런히 적어 내리라. 뿌리가 지켜내는 힘으로 나는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고 다 퍼낼 길이 없는 깊은 물을 퍼담는다. 봄은 나그네를 살찌운다. 설레지 않고 무엇하겠는가.




봄은 시나브로 위대해져서 이렇듯 세상 만물을 흥겹게 합니다. 먹을 것이 먹을 것이 되고 꽃이 꽃으로, 자기 자리로 찾아가는 기적을 베풉니다. 지난해 봄보다 더 좋아진 봄입니다. 그 자리에 다시 피는 것들이라도 전부 다릅니다. 같아도 다른 것, 다시 사는 것, 새롭다고 하는 것은 그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꽃이다, 너는 봄이다 그러는가 봅니다.


매화 보러 임실로 해서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야 할 텐데, 봄날 스케줄이 여지없이 바빠질 것이 재미납니다.


거기 간 김에 나도 모르게 지리산 길가를 따라 떠내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붙들어 주면 그나마 가던 길을 살펴 가겠지만 그것도 영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봄에는 봄이 되니까요. 흥 興, 짓이 나니까요.


어느 산속이든 백련사라는 이름의 절은 있었던 듯합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노랫말처럼 너무 흔한 이름으로 그 절 마당에 발 들이지 않고 훌쩍 지나가는 절입니다. 올 찾아오는 봄에는 눈 감고 백련사에도 들여다볼 생각이 멀쩡하니 드는 것이, 아무래도 봄기운이 벌써 내 방을 채웠는가 싶습니다. 괜히 좋습니다.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 마르코 6:16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말이 우리를 지탱해 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문화 아닌가 싶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외치는 것이 용기였으며 희망이었고 투쟁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없습니다. 뿌리는 땅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파블로 네루다, 그는 시인이었고 망명자였으며 봄을 기다리며 세계 곳곳을 누볐던 나그네였습니다.


그의 멋진 말로 오늘은 인사드립니다.




당신이 세상의 모든 꽃을 없앨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You can cut all the flowers but you cannot keep spring from coming. - Pablo Neruda





잠깐, 아시죠, 입춘에는 좋은 일도 많다는 건양다경 建陽多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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